오래 전 젊었을 때 킬킬거리며 읽은 책이 있다. 미국의 두 전직 스튜어디스가 쓴 “커피를 드릴까요, 차를 드릴까요, 아니면 나를 드릴까요(Coffee, Tea, Or Me?)”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였다. 막 개막한 제트시대의 여객기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까밝혔지만 제목만큼 야하지는 않았다. 40여년 전 한국최초의 주간지였던 ‘주간한국’에 번역본이 연재됐었다.
물론 스튜어디스들이 승객들에게 그렇게 묻지는 않는다. 그냥 “어떤 드링크(음료)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드링크도 커피와 차 외에 각종 소다수와 주스는 물론 맥주와 하드리커까지 카트에 가득 채워 밀고 다닌다. 어쨌든 자고로 스튜어디스는 ‘여객기의 꽃’으로 치부된다.
요즘은 스튜어디스보다 ‘항공 승무원(Flight attendants)’이라는 호칭이 더 일반적이다. 임무도 기내식과 음료 서비스에만 그치지 않는다. 베개, 담요, 슬리퍼, 눈가리개, 두통약 등 승객들의 시시콜콜한 요구를 일일이 챙겨준다. 좌석벨트 착용 등 승객들의 안전규칙 이행여부도 점검한다.
‘Stewardess’는 ‘Steward’의 여성형으로 영국 여객선의 ‘사무장(Chief Steward)’ 제도에서 유래했다. 사상최초의 여객기 스튜어드는 독일인 하인리히 쿠비스(1912년)였다. 영국의 임피리얼 항공은 1920년대 ‘기내 사환소년’으로 불린 스튜어드를 고용했고, 미국의 웨스턴항공과 팬암 월드항공은 1928년 스튜어드를 채용해 처음으로 기내식을 서비스했다.
세계 최초의 스튜어디스는 1930년 유나이티드 항공에 고용된 간호사 엘렌 처치(당시 25세)였다. 뒤이어 다른 항공사들도 간호사들을 승무원으로 고용해 스튜어디스라는 호칭이 고착됐다. 그 무렵 미국 여성들은 취업기회가 거의 없었을 뿐더러 대공황 시기였던 탓에 1935년 두 항공사가 43명의 스튜어디스를 모집한다고 광고하자 2,000여명이 몰렸었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 간호사들이 대거 군에 소집되면서 스튜어디스 취업문이 넓어졌지만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선발조건도 더 까다로워졌다. 나이 18~26세, 키 5피트 이상, 체중 118파운드 이하, 고졸이상 학력에 미혼이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비공식 선발요건은 미모였다. 항공사들이 ‘섹시한’ 여승무원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기 때문이다.
점보기들이 하늘을 누비면서 스튜어디스들도 절정기를 맞았다. 헐리웃 스타 뺨치는 미모를 앞세워 잡지표지는 물론 화장품에서 담배까지 각종 상품광고에 모델로 등장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취임축하 무도회의 공식 호스티스도 스튜어디스가 맡았다.
스튜어디스는 한국여성들에게도 꿈의 직업이지만 미스 코리아나 들어갈 만큼 취업문이 좁다. 엊그제 한 외신은 스튜어디스 취업에 8번 낙방하고 9번째 도전하는 25세 커피숍 여점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녀는 하루에 치킨 샌드위치 한 개만 먹고, 짐에서 2시간 운동하고, 한시간반 화장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6시간 공부한다고 했다.
하지만 스튜어디스의 호시절은 이제 끝인 것 같다. 항공여행이 갈수록 대중화되고 있다. 미 전국의 공항에 연간 8억명이 드나든다. 승객들은 스튜어디스의 미모가 아닌 아이폰에 정신을 판다. 가장 싼 항공요금과 정시 출발만이 이들의 관심사다. 더구나 요즘 스튜어디스들 중에는 미모와 거리가 먼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많다. 취업 차별금지법 덕분이다.
한국 스튜어디스들의 위상도 예전만 못하다. 테러범에 대비해 무술훈련을 받지만 대기업 임원 승객에게 뺨을 얻어맞는다. 최근 아시아나 기 추락사고 때는 승객들을 업어 날랐다. 여성 대통령 시대답게 자질있는 여성들의 진출분야가 넓어지고 있다. 본국 행 비행기에서도 아줌마 스튜어디스로부터 “커피 드릴까요”라는 말을 들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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