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그들의 양심적인 말을 죽기 전에 듣고 싶어요.”위안부 할머니들은 나이 탓인지 물질적인 보상도 이제 포기해버렸다. 최소한 양심적인 한마디 “잘못했다” 라는 진심어린 사과를 넋이 된 분들에게 말해야 한다며 외치고 있다.
인간적 권리를 유린당한 희생자들이 억울함을 밝히지도 못하고 거의 떠나버린 지금. 일본이 동아시아를 침략한 시대에 가난한 집에서 10대로 자라던 죄밖에 없다. 각 가정의 귀한 딸들이었다. 성노예 할머니들의 억울함을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한국과 세계의 인권옹호단체 봉사자들을 향해 깊은 존경을 표한다.
송신도(92세, 충청남도 대덕출신) 할머니는 16살 때 중국으로 끌려가 위안부로 살다 일본 에서 살고 있다. 용감한 그녀는 1993년 4월5일부터 일본정부에 정식 사과를 요구하며 싸웠지만 재판에 졌다. 외국인이어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일본 귀신이 되었다며 송장 같은 몸이 되어 패잔병처럼 누워있다. 텔레비전에 나온 지쳐있는 그 모습.
19살 때 만주로 끌려간 이수단 할머니(93세)는 중국 양로원에서 정신분열증 치료약을 먹고 있다. 평안북도 고향 생각만 하면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눈시울 적시는 주름진 얼굴, 차마 볼 수가 없다. 이용녀 할머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살며 일본군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앞장서다가 지난 11일 87세로 별세했다. 그도 열여섯 나이에 끌려가 미얀마 양곤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고초를 겪었다.
고맙게도 아직 건강해서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는 김복동 할머니(86세)는 우리의 희망이다.
동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생활. 강간수용소(위안소)에서 도망치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공부하고 싶은 희망과 돈을 벌어 효도하려던 착한 마음이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 20만명이 넘는 한국과 중국,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네델란드의 어린 여성들의 억울한 넋이여.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뉴저지 등 여러 주의회가 ‘위안부 결의안’ 을 통과시키며, 일본정부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후손들에게 진실한 역사교육을 시키라고 촉구하고 있다. 동부의 기림비에 이어 글렌데일 시립 도서관 정원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다행히 일본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위안소는 군대의 전용시설이었다’는 1938년 3월 서류를 발견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산시성에서 군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끌려 온 처녀들을 성노예로 삼았던 과거를 일본군인 마쓰모토 마사요시(현재 91세, 일본군 위생병 출신)도 솔직히 고백하며 사죄했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도 이제 와서 부정하면 안된다고 말했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일본이 존엄성을 가진 나라로 인정 받으려면 독일처럼 정부가 배상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기계처럼 하루에 수십 명을 맞아야 했던 감옥생활.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계급에 따라 생리적 욕구를 채웠던 일본군인들. 그 군인들의 양심도 할머니들의 멍에처럼 지하에서 울고 있을까. 일본 정부는 비겁한 변명을 멈춰야 한다. 일본정부는 양심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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