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오거스틴은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기독교와 대립각을 세우던 마니교도였다.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 술과 여자를 탐하는 방종한 생활로 날을 보냈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인간의 원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인간이 얼마나 쉽게 죄에 물드는 존재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독교의 창시자로 불리는 사도 바울도 원래는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기독교도를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던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기독교도로 개종한 후에는 지중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기독교의 이론을 정립하다 로마에서 순교자로 생을 마감한다. 개종한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국에서 바울과 같은 인물을 찾는다면 누가 있을까. 아마 김영환이 아닐까. 82년 서울법대에 들어간 그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을 꿈꿨다. 그는 사회주의에 빠져들다 주체사상을 발견한다. 극우 독재의 정반대에 서 공산주의를 한국 현실에 맞춘 것처럼 보인 주체사상에 심취한 그는 ‘강철 서신’이란 이름으로 이를 한국 사회에 전파한다.
결국 김일성의 눈에 띈 그를 북한 공작원이 찾아오고 드디어 91년 그는 강화도 산언덕에 있는 두 개의 묘지(일명 쌍묘)에서 이들과 접선해 반잠수정을 타고 황해도 해주로 건너간 뒤 노동당 간부들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김일성을 만난다. 그러나 사흘 동안 장시간 김일성과 이야기를 나눈 그는 오히려 실망을 느낀다. 그 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주체 철학에 대해 이 사상의 창안자로 알려진 김일성이 너무도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김일성은 공산주의 사상을 한국식으로 포장한 민족 공산주의나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수령론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항일투쟁을 벌이던 30년대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은 북한의 당간부가 보통 시민들을 한국보다 훨씬 깔보며 천대하는 것을 보고 더욱 커졌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이상향으로 여겼던 북한이 자신의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중앙위원장으로 있던 사상 최대의 지하당 조직 민혁당을 해체하고 전향을 선언한다.
그를 믿고 따랐던 운동권 중 1/3은 환멸을 느끼고 아예 탈퇴하고 1/3은 그를 따라 전향하며 나머지 1/3은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 중 하나가 지금 내란 음모죄로 체포된 이석기다. 이석기와 같이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한 세력의 대부분은 지금 통합진보당에 포진해 있다.
사상 전향을 한 후 방황하던 그가 갈 길을 확실하게 해준 일이 벌어진다. 강철환을 비롯한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이들의 입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는 이들을 구하는데 자신의 생명과 남은 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대표적인 종북주의자가 반북주의자로 변신한 것이다.
전두환 때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던 그는 최근에는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고 북한 인권 운동을 하다 중국 공안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믿음을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감옥을 안방 드나들 듯 하며 갖은 고초를 겪은 바울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그가 지난 주 LA에 왔다. 23일 한인회관에서 열린 그의 시국 강연회에는 200명에 가까운 청중이 방을 가득 메웠다. 북한 당국이 제거 대상 1호로 꼽고 있는 그의 표정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그간 고초로 인한 피곤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신념을 위해 담담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모습뿐이었다.
그가 살아생전 북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이 외면하고 있지만 이 시대 한민족 최대 과제인 북한 인권을 위해 목숨 걸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이미 승자로 만들고 있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도, 역사가 기억하는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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