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루이지애나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 역사상 가장 큰 재산 피해를 입힌 태풍으로 ‘카트리나 모먼트’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당시 아들 부시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 무기를 없애겠다고 이라크로 쳐들어가 죽을 쓰고 있었다. 거기다 카트리나 같은 대형 사고에 대한 대응도 무능과 늑장의 연속이었다.
가뜩이나 이라크로 미국민의 신뢰를 일어가던 부시 행정부는 카트리나 연타를 견디지 못했다. 이와 함께 ‘카트리나 모먼트’는 과거 사람들이 의심하던 일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임기 말 금융 위기까지 겹치면서 부시는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란 조롱을 받아야 했다.
이런 부시의 무능과 실정을 통렬히 공격하며 혜성 같이 나타나 백악관에 들어간 것이 바로 버락 오바마다. 그러나 부시가 카트리나로 두들겨 맞은 것과 같은 시점인 집권 5년차인 오바마의 정치 생명은 부시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집권 직후부터 5년 간 두 사람의 지지도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너무나 똑같아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오바마의 인기 추락은 재난에 가까운 오바마케어 시행과 직결돼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오바마케어 시행 한 달 간 오바마케어 건강 보험에 등록한 사람은 1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당초 예상의 1/5에 불과한 숫자다. 정부 발표는 보험을 선택한 사람은 모두 가입자로 보고 있으나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내야 보험에 든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입자는 정부 발표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케어 가입을 위한 연방 정부 웹사이트가 엉망진창인 점을 감안하면 이만큼이라도 등록한 것이 용하다. 오바마 말대로 언젠가는 웹사이트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입자는 지금보다 많이 늘어날 것이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기존 보험이 오바마케어가 규정한 보험 자격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보험 취소 통보를 받은 수 백 만 미국인들이다. 이들의 아우성에 견디다 못한 민주당 의원들은 오바마에게 자신이 수십 차례 약속한 것처럼 이들이 기존 보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오바마는 이를 받아들여 보험사들이 1년간 기존 상품을 계속 팔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새 법에 따라 보험 상품과 가격을 정해놓은 보험사들이 이를 다시 뒤집을 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되면 오바마케어 규정에 따른 새 보험 가입자가 대폭 줄게 된다. 커버리지는 낮지만 보험료가 싼 기존 보험을 계속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다.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웹사이트를 통해 오바마케어 보험을 택한 사람은 주로 늙고 병든 사람들이다. 젊고 건강한 사람은 외면하고 늙고 병든 사람만 모여든다면 오바마케어의 보험료는 폭등할 수밖에 없다.
시한을 1년 연장한 것도 문제다. 지금부터 1년 후면 2014년 중간 선거가 있는 때다. 선거를 앞두고 수 백 만 명의 미국인들이 다시 보험 취소 통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오바마와 달리 재선을 앞두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이를 원할 리 없다. 지난 15일 공화당 주도로 연방 하원이 통과시킨 기존 보험 영구 유지 법안에 39명의 민주당 의원이 동참한 것은 이런 정치적 현실의 반영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오바마에 대한 지지도가 39%로 사상 최저로 추락했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그에 대한 신뢰와 호감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미국인 과반수가 그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 선거 때부터 전국민 의료 보험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었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던 오바마케어마저 이처럼 엉망이라면 나머지는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미국인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오바마도 부시처럼 집권 5년차에 ‘카트리나 모먼트’를 맛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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