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존 F 케네디 암살, 50년전 현장의 목격자들
▶ 카 퍼레이드 연도 "오 마이 갓" 영부인 외마디 비명, 공중전화 찾아 건물로 들어갈 때 마주친 ‘범인’ 오스왈드, 응급실, 총탄 관통한 대통령의 목과 머리엔 커다란 탄흔, 오후 1시 라디오 뉴스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내외가 댈러스 도로변에 늘어선 환영객들을 향해 미소짓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몇 분 후 저격을 당했다.
1963년 11월 22일 오후 12시30분. 존 F 케네디 대통령 피격 당한 그날 그 시간, 현장 상황을 지켜본 역사의 ‘증인’ 가운데에는 로컬 라디오/TV 방송인 피어스 올만(당시 29세)도 끼어 있었다. 댈러스 지역 방송국인 WFAA의 프로그램 매니저였던 그는 케네디 대통령의 텍사스 방문에 앞서 특집방송을 편성하느라 수 주일을 허둥대며 보냈다. 특집 프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텍사스의 일부 관리들이 민주당 소속 대통령의 신변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수색이 짙은 텍사스에서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냉대와 홀대를 받기 일쑤였다. 린든 B 존슨 부통령과 아드라이 스티븐슨 유엔 주재 대사도 텍사스에서 험한 꼴을 당했다. 특히 스티븐슨 대사는 군중이 지켜부는 가운데 한 시위자로부터 구호판으로 두드려 맞는 참담한 수모를 겪었다.
그날, 날씨는 화창했다. 며칠간 잔뜩 찌푸렸던 잿빛 하늘이 걷히면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올만은 대통령 내외의 러브 필드 공항 도착을 알리는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컨버터블을 몰고 직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덮개가 없는 리무진 차량 편으로 공항을 출발했다는 아나운서의 실황중계를 듣는 순간 퍼스트 커플을 직접 보아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대통령 일행의 모터케이드는 WFAA에서 고작 두 블럭 떨어진 휴스턴 스트릿 상의 딜리 플라자를 지나갈 예정이었다.
다행히 올만은 시간에 맞춰 휴스턴과 엘름 스트릿 코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서있는 길 건너편에는 텍사스 스쿨북 디포지토리의 7층 건물이 버티고 있었다. 이곳은 텍사스 주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를 보관하고 회사였다.
바로 맞은 쪽 길에는 티나 파우너 펜더가 홈무비 제작에 주로 사용되는 8밀리 짜리 시어스 타워 배리줌 카메라를 든 채 대통령 내외의 모터케이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펜더는 캐클린 케네디에 매료된 13세 소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도 큼직한 야시카44 카메라를 들고 인도에 서 있었다.
오후 12시30분. 대통령 일행을 태운 모터케이드 행렬이 휴스톤 스트릿으로 들어서자 관중 사이에 환호성이 일었다. 운이 좋게도 펜더는 경비 경찰의 승인을 얻어 도로에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다. 펜더는 뷰파인더에 잡힌 재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영부인의 미소는 햇살보다 환했다.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총소리를 들은 올만은 텍사스 스쿨북 디포지토리 건물의 7층 창문에서 라이플 총구가 사라지는 것을 흘낏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총소리가 난 직후 그는 대통령의 양손이 턱 근처로 올라갔다 떨어지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고, “오 마이 갓”이라는 영부인의 외마다 비명도 들었다.
그는 회사에 긴급 상황을 전하기 위해 길 건너편의 텍사스 스쿨북 디포지토리 건물로 달려갔다. 그곳에 공중전화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막 건물 입구로 들어서려던 그는 마침 밖으로 나오는 한 남자와 맞닥뜨렸다. 머리색이 짙은 마른 몸매의 남성이었다. 올맨은 다급하게 “전화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고, 그 남성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키며 “저 안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날 밤 올만은 그 남성의 이름이 리 하비 오스왈드라는 사실을 TV뉴스를 통해 알았다. 그는 케네디 저격사건의 용의자였다.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누군가가 펜더의 손목을 잡아당겨 도로 위에 엎드리게 했다.
펜더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갈짓자로 굴러들어오는 대통령의 리무진과 권총을 꺼내 든 채 도로 한복판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사주경계 태세를 취한 경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통령 일행을 태운 차가 사건 현장을 빠져나간 후 펜더의 부모는 딸에게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냐고 물었다. 모두가 넋이 빠져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날 펜더는 대통령 내외 촬영을 위해 담임 교사의 허락을 받고 점심시간에 아빠와 엄마를 따라 학교 밖으로 나왔었다.
다시 학교에 도착했을 때 급우들은 교실에 앉아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아나운서는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했다. 오후 1시였다.
파크랜드 하스피틀은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병원으로 들어온 후 경호요원들과 정사복 경찰이 병원을 사실상 접수했다.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타고 있다가 피격을 당한 존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는 계속 피를 토했다. 그는 폐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린든 존슨 부통령도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마침 그날 당직 간호사였던 필리스 홀(당시 29세)은 응급실로 들어가 대통령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케네디의 눈 주변은 짙푸르게 변해 있었다. 홀은 대통령의 맥을 짚어보았다. 맥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신을 놓고 의료진은 기도절제술을 시도했다. 총탄이 관통한 대통령의 목과 머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재키는 남편의 발에 손을 얹은 채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재키가 입고 있던 핑크색 샤넬에는 남편의 뇌수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홀은 영부인에게 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잠시 안정을 취할 것을 권했지만, 재키는 남편과 함께 있겠다고 했다.
오후 1시, 윌리엄 켐프 클락 박사는 케네디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퍼스트레이디의 곁을 지나며 위로의 뜻을 전했다. 재키는 침묵했다.
케네디가 비명에 간 지 50년이 지났지만 올만은 아직도 오스왈드의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오스왈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야 비로소 그가 대통령 저격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직도 그는 50년전의 악몽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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