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는 천년의 세월을 한 나라의 무의식에 흐르게 하며 다시 나타나곤 한다. 복사꽃 만발한 숲에서 한바탕 꿈을 꾸고 돌아와 보니 도끼자루가 썩어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에 박팽년과 함께 도원을 다녀온 후 안견에게 꿈에 본 바를 설명하여 그리게 한 것이라고 한다.
1447년 4월20일에 착수하여 3일 만에 완성한 그림으로 웅장하고 환상적인 세계가 교묘하게 구현된 걸작인데, 봄날이면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다. 봄꽃의 향기를 어찌 그릴 수가 있을까. 향기는 그릴 수가 없다고 하나 실은 그게 아닌 듯싶다.
올리브 나무숲에서 그림을 그리다 잠이든 날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숲에 펼쳐놓은 그림 위에 눈부시게 하얀 올리브 나무 꽃들이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그림은 밤새 이슬을 맞았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봄꽃들을 그림에 붙여보았다. 하얀 꽃들은 갈빛으로 변했으나 그 그림을 다시 바라볼 때에 숲 향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숲에서 사는 내가 숲 향에 젖어있었고 손끝이 청명하고 시선이 나무 숲 그늘을 닮아 서늘했다. 그림이라는 것이 유화라는 물질 에너지에 작가의 마음을 캔버스에 담는 것이니, 알 수 없는 향기에 그윽한 것이 당연한 듯싶다. 안견이 그린 복사꽃 숲은 전체의 숲이 너무나 커서 복사꽃이 핀 마을은 아주 여리고 작은 분홍 색채의 숲으로 보이는데, 그곳에 살았던 선인들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그린 것이 또한 화가의 큰 마음일 듯싶다.
반가운 비가 내리고 가끔 지나다니는 버질 거리엔 분홍 꽃들이 만발해있다. 곧 연보라 빛 자카란다 꽃이 가득 온 도시에 피어오를 것이다.
안견이 전해들은 복사꽃 만발한 숲을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보곤 한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그 숲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하고, 봄날의 향기 가득한 한 생을 살다가 마침내 지는 ‘순간’을 꿈꾼다. 몇 날이고 그 향기 마음에 가득히 품고 지내다 보면 나의 무릉도원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안견은 꿈 얘기를 들은 즉시 그림을 그렸다는데 21세기의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아마도 오래오래 그 꿈을 꾸어야 한 장의 그림이 태동할 듯 싶다. 꼭 그러한 그림을 한 장 그릴 수 있다면 조상이 전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시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으련만…텅 빈 마음의 거울에 생생히 그 숲을 떠올리며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이 시간 속에 녹아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한 가운데에서 미친 꿈을 꾼다. 미쳤다는 것은 어디에 닿았다는 것일진대 하늘과 땅이 닿은 그 자리, 봄 향기 천지에 가득한 그 자리에서 마음껏 봄 향기에 취한다.
저절로 어깨춤이 나는 시절의 흥취에 겨워 저리도 다정한 봄바람을 또한 어떻게 그릴까. 마치 바람이 된 것처럼 가슴을 활짝 열어 가벼이 붓을 쥔 손목을 움직이며 연분홍색 물감을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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