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가 최고 기온이었던 날, 일요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길이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앞만 보며 주차장을 향해 걷고 있는데 바로 앞서 가던 사람이 갑자기 멈추며 남편과 내게 말을 건넸다.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인데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자친구와 문제가 있어 하느님의 조언을 얻고자 미사에 참석했는데 응답을 얻지 못하고 갑니다.” “네?”
남편과 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너무나 개인적인 사연을 갑작스레 듣게 되어 순간적으로 대답을 못 하고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지금 이 추운 날에 농담하는 걸까?
“당신들이 절 좀 도와주실래요?” 라는 말을 듣고서야 이 사람이 진실로 우리의 의견을 묻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차장까지 불과 3분정도의 거리를 같이 걸으며 우린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여자 친구와 헤어져야 할까 아니면 계속해야 할까를 결정짓지 못한 채 그날 미사에 참석해 어떤 응답을 얻고자 했지만 미사 후에도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생면부지의 우리에게 손길을 내민 거라 했다. 생각해 보면 제 3자의 의견이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기에 판단이 정확할 수가 있지만 남에게 나의 치부를 보인다는 게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 우린 그가 여자 친구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고 그에게 “집에 돌아가는 즉시 전화를 하라”고 부추긴 후 헤어졌다. 몇 걸음 후 뒤를 돌아보니 차 안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우린 서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어쩜 그는 우리의 조언이 아니었더라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가장 절실한 시기에 가슴에 와 닿는 ‘한마디’가 끼치는 영향은 그 무게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는 아직도 가슴 아린 일상생활의 바탕이 되는 ‘한마디’가 있다. “엄마, 딸 노릇 제대로 못 해 미안해요.” “미안하긴 뭘…….” 엄마가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이다.
부모를 한국에 두고 온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나 역시 한국 나들이를 자주 할 기회가 없었고 당연히 외동딸의 역할을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다 며느리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새언니 같은 며느리 없다고 윽박지르기만 했고, 두렵고 불안했을 잦은 병원출입에 한 번도 동행할 기회가 없었으며, 엄마와 둘이서 단 한 번의 여행도 해 보지 못한 외동딸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그런 딸을 탓하지 않으시고 ‘미안하긴 뭘…’ 라는 말로 나를 죄의식에서 풀어 주셨다.
이제까지의 세월 속에서 나의 ‘한마디’가 지인들에게 실의보다는 희망을, 아픔보다는 포근함을 주었는가를 반성하면서 앞으론,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의 말을 가려 할 줄 아는 차분함과 지혜로움을 배우려 노력하리라 마음을 다진다.
오늘도 난 ‘미안하긴 뭘….’ 이 한 마디를 중얼거리며 이해와 용서와 포용을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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