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을 휘어잡는 스페이스 니들이나 그보다 더 광활한 워싱턴주 하늘을 호령하는 만년설의 눈산(마운트 레이니어) 같은 명소만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아니다. 웅장한 산봉우리와 평화로운 해안마을을 배경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퓨짓 사운드 바다 위에 오뚝 뜬 그림 같은 페리도 외래 관광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퓨짓 사운드 일원엔 크기가 각각 다른 페리 23척이 20개 도시와 섬을 잇는 10개 노선에 연간 365일 운항하며 2,200여만명의 관광객과 통근자를 실어 나른다. 전국의 페리 교통망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주정부 페리청(WSF)이 운영한다. 노선이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아나코테스-샌완 군도 노선은 뉴욕타임스가 2011년 ‘꼭 가볼만한 곳’ 2위로 꼽았다.
페리는 단일항목으로 가장 많은 외래 관광객을 워싱턴주에 유치할 뿐 아니라 주민들에겐 충실한 다리가 돼준다. 한 설문조사에서 서부 워싱턴 주민의 90%가 페리를 탄다고 말했고, 퓨짓 사운드 지역 주민의 48%가 여흥 나들이를 위해 페리를 타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페리가 닿는 퓨짓 사운드 지역 카운티의 인구는 주 전체 인구의 60%를 점유한다.
나도 연간 서너 차례 페리를 탄다. 대개는 올림픽 국립공원과 태평양 해안의 명승지를 찾아갈 때 타는데 집에서 가까운 에드몬즈-킹스톤 노선을 이용한다. 이 노선엔 ‘점보 급’으로 분류된 ‘스포켄’호와 ‘왈라왈라’호가 운항한다. 길이 130m, 폭 27m에 무게가 3,246톤이다. 규모가 두 번째 큰 워싱턴주 페리로 승객 2,000명과 차량 188대를 실을 수 있다.
페리 터미널 주차장에 도착한 차량들은 줄지어 기다렸다가 선착순으로 승선하지만 페리 안에선 담당직원이 지정하는 줄에 주차해야 한다. 비슷한 크기의 승용차들을 배 아래층의 양쪽 맨 갓 줄부터 동시에 배치하면서 안쪽으로 채워 들어온 후 한 가운데는 주로 RV나 대형 트럭들을 배치한다. 하중이 한쪽에 치우쳐 배가 뒤집히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장장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워싱턴주 페리도 사고는 겪었다. 작년 9월 바로 그 샌완노선에서 페리가 돛단배를 들이받았다(인명피해는 없었다). 1906년 11월엔 페리의 전신인 소형 증기여객선이 알카이 근처에서 범선과 충돌 후 침몰해 승객 39명이 숨졌다. 2012년엔 탄자니아로 팔려갔던 워싱턴주 페리 ‘스캐짓’호가 침몰해 31명이 숨지기도 했다.
‘세월’호는 여객선이 아니라 승객과 차량을 함께 수송하는 페리이다. 정원 921명에 차량, 트럭, 컨테이너 등을 400대 가까이 싣는다. 워싱턴주의 최대 페리인 ‘타코마’호(2,500명, 202대)와 맞먹는다. 노선도 인천에서 제주까지 거의 14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 배를 모는 선장과 항해사와 선원들은 자질도, 리더십도, 책임감도 없는 허수아비였던 모양이다.
워싱턴주 페리는 선원 한 명이 결근할 경우 다른 비번 직원을 대체하지 못하면 아예 결항한다. 무자격자를 쓰지 않는다. 미국인 평균체중이 160파운드에서 20년만에 185파운드로 늘어나자 페리정원을 250명 줄였을 정도로 안전에 신경을 쓴다. 그래야만 항해도중 종종 나타나는 범고래 떼를 보려고 승객들이 한쪽 창가로 몰려와도 배가 기울지 않는단다.
고교생들이 페리를 타고 수학여행 가는 좋은 세월, 배가 뒤집힌 절박한 상황에서도 스마트폰 메시지로 부모를 위로하는 기특한 세월이 됐지만, 그 ‘세월’ 호의 선장은 가라앉는 배에서 맨 먼저 뛰어내려 구명보트에 탄 후 젖은 돈을 말리고 있었다. 최첨단 IT 선진국이지만 최악의 후진국 형 인재사고가 터지는 한국은 아직도 과도기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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