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때 중학 1년생이었다. 우리 가족은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해 흑석동 집에 남아있었다. 많은 이웃들도 같은 처지였다. 밀기울로 만든 풀떡과 호박죽으로 하루 두끼를 때웠으나 몇달이 지나서 않아 이 식량조차 떨어져 버려 연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굶기를 밥먹듯 하고 있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논두렁과 신작로 가에서 뜯어오신 나물을 소금에 무쳐 여러 쟁반에 담아 밥상에 올려 놓으셨다. 지금은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지만 그때만 해도 흑석동은 논밭이 많아 나물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쟁반의 나물은 질경이, 명아주, 비름, 씀바귀, 고들배기 등이었다. 부모님과 아들 딸 4남매의 식구들에게는 쟁반의 나물이 코끼리에 비스켓 처럼 금방 없어졌다. 소금에만 무친 나물이었으나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그 후 나는 이처럼 맛이 있는 나물무침을 맛보지 못했다. 특히 질갱이의 맛은 더욱 잊지 못한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와 함께 나물하러가자고 부르셨다. 그 당시 나물하는 일은 여자들만의 몫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네살인 여동생은 어려서 갈 수 없고, 나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하니 나와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논두렁과 신작로 길가에서 밥상에 올라갔던 나물들을 열심히 뜯었다. 정말 어머니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이 나물채취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해에는 질경이가 유난히도 많이 자랐다. 그래서 질경이 반찬은 소원 없이 먹었다.
그런데 한번은 이름도 모르는 나물을 뜯으시기에 그 나물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키가 다른 것들에 비해 훨씬 크며 잎이 적고 거칠었던 이 나물의 이름을 어머니는 ‘머시기’라고 하셨다. ‘머시기’는 충청도의 ‘거시기’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다.
어머님이 나물이름을 즉각적으로 지으신 사실을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야 ‘머시기’를 먹을 때 알게 되었다. 저녁 밥상에는 옆집에서 꾸어온 보리로 쑨 꽁보리죽과 질경이, 명아주, 그리고 ‘머시기’가 올라왔다. 식구들은 새로운 나물 ‘머시기’를 너무 맛있게 먹었다.
나는 피츠버그대학원에서 학위를 마치고 공부를 마치지 못한 아내를 그곳에 두고 1971년 겨울 볼티모어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한 대학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당시 볼티모어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교인가운데 아파트를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을 구했다.
1972년 이른 봄 세 홀아비가 쓰는 아파트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이분들은 이주영 집사(작고), 이흥극 집사(작고), 그리고 이덕열 집사 등이었다. 이분들이 홀아비가 된 것은 가족은 한국에 두고 그들만 미리 이민을 왔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가발장사를 하고 있던 이덕열 집사가 나물을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목공인 이주영 집사, 모터 기술자인 이흥극 집사 등을 포함해 홀아비 네 명이 나물나들이에 나섰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시립공원에서 질경이를 두 샤핑백에 가득 뜯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이를 삶아 찬물에 며칠을 욹었다. 요리 솜씨가 있는 이덕열 집사가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어 무친 질경이 반찬을 6.25이후 가장 많이 먹었다. 그런데 ‘머시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세 홀아비의 가족이 한국에 왔으며 내 아내도 공부를 마치고 오게 되어 홀아비 가족은 뿔뿔이 헤어졌다.
몇 년 후 어머님이 한국에서 오셨다. 어느날 저녁상에 어머니께서 질경이 반찬을 올려 놓으셨다. 낮에 심심해서 길가에 나가셔서 뜯어 오셨다는 것이다. 홀아비 시절 이후 몇 년 만에 모처럼 맛보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머시기’는 보시지 못하셨느냐고 물었다. ‘머시기’는 한국에도 없고 미국에도 없다고 하셨다.
지금은 한국에서 질경이, 비름, 명아주, 고들빼기, 씀바귀 등 6.25나물들을 농장에서 재배하여 시장에서 팔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머시기’는 재배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어머니날을 맞으며 어머님의 ‘머시기’가 다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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