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봄을 25년째 살다 올해는 모처럼 서울의 봄을 누릴 수 있었다. 4월 말과 5월 중순 사이, 1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사람이 이승을 떠나는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 시기를 택하리라.
지난 4월28일부터 5월1일까지 제16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미주) 지역회의가 서울의 워커힐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참으로 알차고 뜻 깊은 행사였다.
현경대 수석부의장의 기조연설, 박찬봉 사무처장의 2014 민주평통 주요업무 보고에 이어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의 국정보고를 통해 정부의 통일환경 변화와 외교정책 방향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 통일시대를 위한 방향과 과제에 대한 국정보고를 통해서는 최근 남북관계 상황,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의 구조적 접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구상 등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북한인권청년단체(NAUH)대표 지성호씨의 ‘내가 겪은 북한’ 이라는 증언을 통해서는 북한의 실상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행사의 마지막 날인 5월 1일에는 ‘통일 안보현장 시찰’이 있었다. 이른 아침 우리 일행은 워커힐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임진각으로 향했다. 그 옛날 어딘가를 가고 싶을 때면 찾아가곤 했던 그 임진각을 30여 년 만에 다시 방문하는 감회가 새롭다.
임진각에 도착해서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의 종소리도 울려보고, 애타는 마음으로 통일을 기원하는 글을 써서 자유의 다리 철망에 리본을 매달기도 했다. 이것이 정녕 무슨 의미가 있으며 통일에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나보다 앞서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그렇게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자유의 다리를 앞에 두고 북녘 땅을 망연히 바라보다 먹먹해지던 마음, 나 보다 오래된 녹슨 증기기관차, 총탄으로 상처투성이인 그 몸체를 어루만지며 형언할 수 없는 비애감에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제3땅굴을 직접 들어가 봤을 때는 소름이 끼쳤다. 1978년 10월 17일에 발견한 이 땅굴은 서울에서 불과 52Km거리이며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1시간에 군인 3만 명이 이동 가능한 땅굴이다.
땅굴 내부는 흙이 아닌 온통 바위투성이였다. 세상에… 이걸 어떻게 뚫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정신이 반짝 든다. 우리가 곤히 잠자고 있을 때 저들은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서 지하로 쳐들어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누가 아는가, 그동안 또 다른 땅굴들을 계속 파 들어오고 있는지. 같은 민족끼리 종전도 아니고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는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가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다만 안타깝다.
망원경을 통해 개성의 송학산, 김일성 동상, 기정동, 개성공단 등을 육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도라전망대를 거쳐 일행은 도라산역(都羅山驛)에 도착했다. 도라산 역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경의선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4월 11일에 세워진 역으로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 리에 있는 역이다.
민간인통제구역에 위치하고 있고 아직 남북을 잇는 정기 열차가 없기 때문에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떨어져 있는 곳으로 통일을 상징하는 가장 간절한 염원이 깃든 곳임을 이번 통일 안보현장 시찰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생의 어느 때에 통일이 되어 다시 이 도라산 역을 찾아올 날이 있을까? 도라산 역에서 평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서 정녕 우리가 북한 땅을 자유로이 걸을 수 있는 그날이 올까?
6.25 직후에 태어나 반세기를 훨씬 넘긴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분단된 나라에 태어난 내가 조국을 위해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뒤늦게나마 민주평통 위원으로 봉사하게 된 것을 보람찬 일로 생각한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그리고 그 일이 통일을 위한 일이면 내 기꺼이 사명감을 갖고 봉사하리라. 도라산 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끊을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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