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만에 외가에 갑니다. 산발치 따라 한나절 걸리던 길. 이제는 아스팔트 포장으로 금세 닿습니다. 동네어귀 느티나무는 여전한데, 이 작은 산골에 아는 이 하나 없다니요. 말끝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를 흔들던 외삼촌은 재작년에 뒷산에 드셨고요, 이젠 뜨락에 호호 할미가 된 외숙모 혼자 놀고 있습니다. 누구슈? 맑은 웃음이 고요를 저으며 꽃밭에 쏟아집니다. 도라지꽃도 살랑거리고, 작약도 짙붉은데, 나를 예뻐했던 그 분, 한 묶음 노란 꽃다지가 되어, 햇살에 섞이고 있습니다. 누구슈? 나비가 폴짝거릴 때마다, 자꾸 되묻고 있습니다. 누구슈? 자꾸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 정한용( 1958-) ‘꽃다지’ 전문
우리는 모두 고향을 등졌다. 어쩔 수 없다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고향을 버렸다. 그곳에는 홀로 늙어가는 어르신들이 계실 뿐이다. 어느 날 문득 외가를 찾아간 시인의 눈앞에 펼쳐지는 정경 또한 다르지 않다. 누구슈? 라 묻는 익명의 재회 속에 클로즈업되는 외숙모. 멀어져가는 인연의 저 가볍고도 깊은 보랏빛. 그 누구의 죄도 아닌 슬픔이 쇠잔하여 더욱 환한 햇살처럼 영혼을 울린다.
-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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