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저녁 워싱턴 DC에서 시정부 주최로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의 달 기념행사가 열렸다. 워싱턴DC에서는 아시안 태평양계 주민들이 가장 빠른 인구 증가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행사장소는 U 스트리트에 위치한 링컨극장이었다. 이 극장은 1922년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워싱턴의 흑인 브로드웨이””라고 알려졌었다고 한다. U 스트리트는 오래간만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날 행사에서 한인사회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문화원이 후원했고 행사 준비 진행을 책임진 워싱턴DC 아태주민국 국장도 한인이었다. 그 뿐 아니라 하이라이트 공연도 다름아닌 대표적 한국문화 공연인 사물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물놀이 공연은 한국에서 사물놀이 창시자인 김덕수씨가 직접 방문 참여하였다. 물론 그는 이전에도 워싱턴 지역에서 가끔 공연을 했었기에 이번 공연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먼발치에서 그의 활동을 지켜 보았던 나로서는 이제 60 대 초로의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고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을 하는 그의 열정에 탄복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김덕수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7년 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활동하던 단체에서 김덕수씨 사물놀이패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공연을 후원했다. 나는 그 때 사물놀이 공연을 처음 접했다. 입추의 여지없는 공연장을 더욱 가득하게 메워 준 것은 역시 압도하는 소리였다. 거의 두 시간 동안 내내 숨을 죽이며 들었던 희로애락을 드나드는 듯한 소리에 매료되었다. 그 당시 김덕수씨는 겨우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1978년에 창시된 사물놀이의 원년멤버 넷 모두 국악예술고등학교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라 했다. 그 중 하나인 김용배씨를 1986년에 먼저 세상 떠나 보냈지만 그 아픈 마음을 감추고 계속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공연을 마치고 모두 당시 알링턴 콜럼비아 파이크 상에 위치한 ‘솔’이라는 한국 레스토랑 이층에 모였다. 소규모 라이브 밴드가 있었던 이 레스토랑이 그 날은 우연히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뒷풀이를 하러 모인 우리들에게는 레스토랑 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더욱 좋은 기회였고 이를 백분 활용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은 노래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한이 서려있는 듯한 목소리가 하나 되어 나올 때는 가슴을 뚫는 듯 했다.
그 사물놀이패의 리더는 역시 김덕수씨였다. 중학교 때부터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단신의 그는 어렸을 때 장고의 신동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예리한 작은 눈은 그룹의 리더로서 필요한 카리스마의 근원이 되는 듯했다. 주로 꽹가리를 치며 우수에 찬 모습의 이광수씨는 누가 보아도 미남이었다. 네 악기 중 김덕수씨의 장고가 리듬으로 음악 전체를 받쳐 준다고 한다면 꽹과리는 멜로디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음악의 메세지 전달 책임을 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것은 주량도 제법 쌨던 이광수씨에게 적격이었다. 징을 잡았던 최종실씨는 신사였다. 그리고 학자 같았다. 사물놀이가 하나의 새로운 음악장르로 발전하는데 이론적 뒷 받침을 해 줄수 있는 역할을 맡기에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북을 든 막내 멤버인 강민석씨는 세상을 떠난 김용배씨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다른 세 멤버보다 여러 살 아래였기에 당시 별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 없이 조용히 그들을 따르는 입장에 있었던 것 같았다. 미국 동부에 친척 어른이 계시다고 하면서 이 곳 생활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 보였다.
위의 네 멤버는 더 이상 같이 한 그룹으로 있지는 않다. 대신 각자 나름대로 공연도 하며 열심히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사물놀이를 처음 소개해 준 그들은 내 마음에 아직도 한 그룹으로 자리 잡아 있다. 이들이 혹시 이 곳에 와 다시 같이 공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전처럼 함께 우리 집에 모여 술 한잔 하며 그 동안 살아왔던 얘기들을 밤새도록 듣고 싶다. 노래도 듣고 같이 부르고 싶다. 앞으로도 이들이 계속 오랫동안 좋은 공연도 보여 주며 조국의 국위선양과 문화보급에 기여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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