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 <69> 유진 오닐 ‘느릅나무 밑의 욕망’
1850년대 뉴잉글랜드의 농장을 배경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무한한 소유욕을 극화하고 있는 미국 자연주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리스 극의 골격을 채용하고 있으며 당시 미국인들의 개척정신과 모성 콤플렉스가 소설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음모와 꿈틀거리는 욕망의 춤은 농부 에프라임 캐벗의 집에 젊은 계모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전처들이 낳은 2명의 아들들은 캐벗이 세 번째 젊은 아내 아비를 데리고 오자 농장 상속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서부 금광으로 떠난다. 그러나 에벤은 자기에게 상속권이 있다고 믿으며 농장에 남기로 작정하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젊은 계모 아비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느릅나무가 상징적으로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이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비극에서는 물욕과 정욕이 뒤엉키는 것에서부터 모든 갈등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욕망 때문에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바로 에벤이다. 모성애를 풍기는 아비의 유혹에 현혹된 뒤에 그것이 후계자인 아이를 만들기 위한 책략이었다고 오해한 에벤의 말이 아비로 하여금 ‘이 아이만 없어지면…”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로부터 많은 소설작품들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이 비극의 경우도 그 밑바닥에는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업(業)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극작가 유진 오닐은 1888년 뉴욕에서 인기 배우였던 아버지 제임스와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오닐이 죽은 뒤에 발표된 ‘밤으로의 긴 여로’는 자신의 지옥 같았던 자전적 요소를 보편적인 문제로 깊이 탐구한 걸작으로 꼽힌다.
1920년에 ‘지평선 너머’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그로부터 현대 미국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본격적인 연극작품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후 4번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은 많았지만 가정에 있어서는 이혼, 사별, 자녀들의 자살 등 불행으로 점철된 어려운 삶을 살았다.
오닐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세력을 밝혀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신에 대한 신앙과 전통적 가치 체계에 대한 신념이 붕괴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것을 희극보다는 비극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인생 자체가 비극이다”라고 말하며 비극이 외면적으로는 패배를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비극적 투쟁이 정신적인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두 대립되는 힘 사이의 갈등으로 인생을 바라본 오닐의 비극관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 중 하나다. 느릅나무는 전제적이고 탐욕적인 캐벗의 위력에 맞서는 힘이 된다. 캐벗이 대표하는 뉴잉글랜드의 엄격한 청교도주의, 탐욕, 계율, 억압에 대비되는 느릅나무는 감성, 사랑, 열정, 욕망, 생에 대한 환희를 상징하는데 이 두 세력 간의 대결구도로 시종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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