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 살던 고향 마을 공동 우물가의 비화(秘話)가 생각난다. 우리 마을 우물은 옛날부터 물맛 좋은 약수로 소문나 동네 아낙네들이 샘물을 철렁 철렁 넘치도록 물동이에 담아 휘청거리며 머리에 얹고 가는가 하면 쌀과 채소를 씻어 가는 동네 사람들과 아래쪽에서는 빨래도 하며 갖은 수다로 웃음꽃을 피우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인화도 도모하고 협력하며 한마음이 싹 트도록 하는 곳이기도 했다. 채마(菜麻)밭에 농사짓는 법이라든가 길삼 하는 법 그리고 결혼중매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는 장소가 바로 공동우물가였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동네사람들 간에 부정적인 일도 생기곤 했다. 예를 들면 집안문제가 밖으로 흘러나오는가 하면 남편과의 문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흉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아낙네들의 입방아가 널리 퍼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속시원하게 한바탕 털어 놓은 다음 목이 텁텁해지는 지 입가에 묻어있는 흰 거품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찬물을 한 바가지 퍼마시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속이 탔으면 저렇게 물을 들이킬까 하며 멀리서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물론 공동우물이란 개인 소유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하여 우물을 깊이 파고 정결한 돌로 쌓아올린 것이라 물이 차고 물맛이 좋아 동네를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모여들어 목을 축이고 잠시 쉬었다가 가는 쉼터이기도 했다.
한편 비극적인 일도 생겼다. 어느 날 우물가에 고무신 한 켤레만 가지런히 벗어놓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사연인 즉 어느 집 며느리가 성질 못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얼마나 괴롭게 했는지 도저히 견딜 길 없어 치마를 뒤집어쓰고 우물에 투신했다는 이야기다.
즉시 동네사람들이 시신을 올리고 우물에 고인 물을 모두 퍼낸 다음 유명한 박수무당을 불러 밤새 고사 지내는 것을 보았다.
옛날에는 가문의 법규가 엄했던지라 출가외인(出嫁外人) 법이 있었다.
시집 보낼 때가 되면 집안의 훈육으로 ‘죽어도 시집에서 죽고 살아도 시집에서 살아라’라는 지침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돌아 올 생각을 말라고 했다.
이런 저런 사연이 많은 한민족 여인들의 애환, 참으로 한(恨) 많은 여성들이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느꼈다.
이 글을 쓰면서 여인네들이 입고 다니는 치마 자체를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치마로 곡식을 담아들면 보자기가 되고 어린아이를 싸안으면 포대기가 되고 님을 드리워 앉히면 정(情) 방석이 된다.
살다가 지쳐 그만 살고 싶으면 둘러쓰고 물에 몸을 던지면 죽음의 면사포가 되므로 여인들의 한복치마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만 하다.
그리고 인간이란 세상 태어날 때부터 울음과 맛을 안다고 했다. 맛 중에는 단맛, 쓴맛, 신맛, 쓰라린 맛, 죽을 맛,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맛이 있다지만 뭐니뭐니 해도 물맛을 알면 물맛 따라 동서 사방 발걸음 옮긴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 날 산수 팔아먹는 시대가 되었으니 세상은 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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