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19년 전쯤 우리가 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하루는 집 둘레를 돌며, 어디가 가장 햇빛이 잘 드는지를 알아보았다.
바로 부엌 창문 밖의 조그마한 공간이 해가 가장 많이 드는 곳이었다. 잔디가 깔려 있어서 그 잔디를 모조리 다 걷어 내고 삽으로 흙을 다 뒤적여 놓고 좋은 흙을 섞어 밭을 만들었다.
그동안 야채를 심었었는데 금년에는 오이씨를 뿌렸더니 얼마 후에 아주 작은 떡잎이 흙 위로 머리를 내 밀었다. 물을 자주 주니까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서 지금은 부엌 창문을 다 덮을 정도로 싱싱하게 잘도 자란다.
한 달 전 쯤, 노란 꽃은 만발했는데 오이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부엌 창문가에 앉아서 오이 넝쿨이 힘차게 기어 올라가는 것을 관찰했는데, 오이는 보이지가 않는다. 그 원인이 어디 있나 생각을 하니 벌이 없는 것이다.
꽃밭이나 야채밭에도. 내 손안에 들어 있을 때는 귀한 것을 알지 못하나 그 귀한 것이 없어지면 그때야 비로소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 전에는 벌이 많았었는데 몇 년 전부터 벌을 보기가 힘들다. 벌의 존재가 없어지니 벌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꽃에 벌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 벌이 꿀을 만드는 것도 중요 하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에 무심히 밖을 내다보니 벌 한 마리가 오이꽃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닌다. 너무나 신기하고 반가워서 “어디서 저 벌은 왔을까?” 하고 한참을 내다보았다. 그 다음날은 친구를 데려 왔는지, 또 한 마리가 늘어서 두 마리가 한참 바쁘게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열심히 일을 했다. 사흘 째 되는 날은 덩치 좋은 범블비(bumble- bee)까지 합세하여 뒤뚱거리며 날아다닌다.
얼마 후에 오이가 여기저기 달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식탁 의자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참으로 자연의 세계는 우리 인간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럽고 신기한 일들이 많다.
벌이 많이 날아 올 때는 벌에게 물릴 것 같아 그 고마움을 몰랐는데 벌이 없어지고 보니 한두 마리의 벌이 오랜만에 찾아오는 것이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는 것이다.
매일 같이 창밖을 내다보면, 오이 줄기는 위로 세차게 뻗어 올라간다. 조그만 씨 한 알이 기적에 가깝도록 우리에게 먹을 야채를 챙겨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더우니 오이 몇 개 따다가 시원한 오이냉국이라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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