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연 리뷰 - LA 오페라 시즌 개막작 ‘라 트라비아타’
▶ 바리톤 도밍고의 중후감, 애절한 부성애 잘 표현, 남자 주인공에는 큰 실망
3막 피날레에서 마지막 아리아를 부르는 비올레타(니노 마차이제)를 슬픔에 찬 제르몽(플라시도 도밍고)이 바라보고 있다.
다 아는 노래, 다 아는 장면, 다 아는 스토리인데도 또 감동하고 또 환호할 수 있는 것이 오페라의 매력인 것 같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맨 처음 접하는 오페라가 이 작품이고, 나 자신도 어릴 때 본 첫 오페라가 ‘라 트라비아타’였다(그때 한국서는 ‘춘희’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13일 LA 오페라가 2014~15시즌 첫 공연작으로 올린 ‘라 트라비아타’를 보면서 여러 번 눈물이 핑 돌았다. 니노 마차이제(Nino Machaidze)의 가슴 미어지는 노래와 연기,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표현한 애절한 부성의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 홀리도록 아름다운 미성의 소프라노 마차이제는 화려한 콜로라투라의 테크닉과 애절하게 호소하는 리릭 소프라노의 기교를 모두 갖춘 열연으로 비련의 여인 비올레타를 노래했다. 워낙 젊고 아름다운데다 연기력도 배우 못지않은 마차이제는 지난 수년간 LA 오페라의 ‘사랑의 묘약’ ‘이탈리아의 터키인’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스’에서 모두 주연을 맡아 호연했는데 이번 ‘라 트라비아타’ 무대에서 절정에 이른 듯한 느낌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특히나 소프라노 여주인공에게 크게 기대어가는 ‘프리마 돈나 오페라’로, 3막에 걸쳐 비올레타가 계속 등장하면서 아리아의 음역과 표현도 높낮이와 색채가 다양하여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역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마차이제는 뭇 남성을 매혹시키는 카리스마틱한 사교계 여왕으로부터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순정의 여인, 그리고 결국엔 폐병으로 죽어가는 병약한 여인의 모습을 모두 완전히 몰입한 열연으로 매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브라비!’ 환호의 세례를 받았다.
도밍고는 이제 무대에 서기만 해도 그의 존재감으로 오페라를 빛내는 것 같다. 2막에서 조르지오 제르몽 역을 맡은 그가 등장하자 ‘라 트라비아타’는 드디어 돛을 높이 올리고 비상하는 느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바리톤으로 안착하여 더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다른 어떤 인물보다 아버지 제르몽의 부성과 인품에 깊이 매료되었다. 과거에는 가족의 명예를 위해 한 여인을 희생시키는 비정의 아버지로 느껴졌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철없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달픈 마음, 또 가련한 여인에 대한 깊은 연민과 비탄의 마음이 더 많이 느껴진 것은 아마 도밍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쉬웠던 것은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 역의 테너 아투로 샤콘-크루즈(Arturo Chac?n-Cruz)였다. 1막의 ‘축배의 노래’부터 망치기 시작해서 끝까지 존재감 없는 주인공으로 무대를 채웠는데 성량도 기교도 연기도 보잘 것 없어서 나중에는 좀 화가 날 정도였다.
LA 오페라는 30년도 안 되는 역사(1986년 창단) 동안에 6개의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렸다. 이번 일곱 번째 프로덕션은 1920년대 파리의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로 만든 마르타 도밍고(플라시도 도밍고의 아내) 감독의 무대인데 2006년에도 같은 프로덕션을 공연한 바 있어서 기시감을 준다는 평도 있다. LA타임스는 LA 오페라가 너무 ‘도밍고’에 의존한 프로그램을 보여준다고 비평했는데, 일반 청중으로서는 그것이 더 고마울 뿐이다.
‘개츠비’ 시대의 플래퍼 패션과 세트, 앤틱 자동차(1929년형 크라이슬러)가 무대에 등장하는 등(굳이 자동차를 무대 위로 몰고 나올 필요는 사실 없었다) 볼거리도 많다. 2막2장에 나오는 집시들의 춤이 참으로 아름답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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