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 <78>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서유럽의 분위기가 마치 가는 붓으로 정교하게 그린 유화(油畵)와 같은 것이라면 동유럽은 큰 붓으로 대강 그려놓은 수채화(水彩畵)와 같은 대조적인 분위기다. 수채화의 부드러운 터치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나는 유럽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서유럽 쪽보다는 동유럽의 문화와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동유럽 체코에서 1968년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슬로바키아의 개혁파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지만 불과 6개월 후 소련의 군사개입으로 인해서 막을 내렸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개혁은 그렇게 ‘프라하의 봄’처럼 잠시 왔다 사라진 일장춘몽과 같은 사건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은 체코의 민주화 개혁, 즉 ‘프라하의 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삶의 모든 것을 아주 가볍게 여기는 토마시와 사비나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대조적으로 삶의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민하며 무거운 비중으로 받아들이는 테레자와 프란츠가 주인공이다. 이 대조적인 성격의 두 커플을 통해서 작가는 시대적으로 좌절하고 고민하는 체코 지식인들의 삶과 사랑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토마시는 테레사를 사랑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여자와 잠을 자려는 듯한 섹스 중독자다. 한때는 잘나가는 외과 의사였지만 소련의 체코 침공 이후 스위스로 잠시 피신했다가 의사 자격까지 상실하게 된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존재의 이유는 섹스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삶을 무겁게 살고 싶지 않아 늘 무책임하고 가벼운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바로 책임지지 않고 그저 순간순간 감정에만 충실하며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의 자세를 비꼬는 표현이다.
한편 사비나와 프란츠 커플은 거꾸로 남자인 프란츠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관계를 이어가기 원하지만 여자인 사비나가 부담스러워하며 프란츠를 떠난다. 사비나는 살아가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을 프란츠에게 남긴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의 성찰… 즉 그것은 삶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인생관과 직관된다.
밀란 쿤데라의 삶에 대한 지적인 문장들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성찰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진정한 정수는 해갈해 주지 않는다. 인간의 관계 안에서 솟아오르는 존재론적인 물음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의 소설은 끊임없이 가볍지 않은 가벼움으로 포장되었으며 그것은 그 자체로 보통사람들의 인생과 비슷하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한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있어서 /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거움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기 위한 가벼움의 몸짓이지만 결국 그로 인해서 잡지의 표지와 같이 통속적인 삶은 인생의 무거운 고뇌와 번민 가운데로 빠져들게 한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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