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에반스 전 연방하원의원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지난 5일 세상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리노이 주의 작은 마을 양로원에 있었던 에반스 의원을 찾아갔다.
1995년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온 그는 올해 63세의 젊은 나이로 20여년의 투병을 끝냈다. 에반스 의원은 언제나 남이 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해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연방의회에 최초로 베트남전 고엽제의 피해를 알렸고,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최초로 미 의회에 상정하였다. 위안부 결의안은 그가 지병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5번이나 재상정 했다. 그가 24년의 하원의원직을 떠나고 난 다음 해에 마이클 혼다 의원이 이어 받아서 마침내 ‘위안부 결의안’이 2007년 통과하게 된 것이다.
내가 에반스 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어느 정신대 모임에서였다. 정신대 문제뿐 아니라 영주권 신청자들에 대해 방문비자를 거절하던 미국 대사관의 30년 넘은 부당한 관행에 대해 나는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에반스 의원은 기꺼이 나의 부탁을 들어 주고 2001년 미 의사당에서 최초로 비자관련 기자회견을 함께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무부는 시정을 하지 않아서 2002년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긴 법정 싸움 끝에 2003년 미 대사관이 영주권 신청자에 대한 방문비자 발급을 시작했다.
두번째로 에반스 의원과 함께 한 것은 한국계 혼혈인 법안 상정이었다. 한국계 혼혈인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연구한 것이 ‘혼혈인 자동 시민권 부여 법안’이었다. 또 다시 에반스 의원을 찾아가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 달라고 부탁하니 그는 주저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2004년 4월 미 의회 사상 최초로 한국계 혼혈인과 아시아 4개국의 혼혈인에게 자동시민권을 주는 법안이 상정되었다. 그러나 그 법안은 의회의 무관심으로 폐기되었고, 재상정을 하기도 했으나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렇듯, 에반스 의원은 항상 약한 자의 음성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목소리를 못내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내주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2006년 대한민국 국회 초청으로 에반스 의원과 나는 법률고문자격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에반스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시는 ‘나눔의 집’을 방문하여 할머니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었다. 그의 따뜻하고 진실된 면을 볼 수 있었다. 몸이 몹시도 불편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았던 그는 나의 멘토이자 친구였다.
장례식장에서 한국정부를 대신하여 안호영 주미대사가 보낸 조화를 보고 한국인이 얼마나 에반스 의원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장례식장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난한 사람을 무료변론해 준 인권 변호사로 그리고 힘없는 자를 도운 진정한 서민의 하원의원으로 회상하였다. 에반스 의원은 남의 권익을 위해서는 눈을 부릅뜨면서도, 자신의 이익 추구에는 눈을 감은 사람 같았다. 그는 사심 없는 공복의 삶을 살다 간 것이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은 아주 작고 허름한 집이었는데 자기 부모로부터 받은 그 집에서 사는 걸 너무나 행복해 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은퇴 후 하원의원에게 주어지는 연금을 포기했다고 한다. 많은 연금을 받기보다 일반인들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옳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돈과 명예를 따라가기보다 진정 국민을 위해 일했던 그는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정치인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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