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듀상 ‘the Big Glass’
마르셀 듀상은 유리 위에 그린 그림을 옮기다가 떨어뜨려 산산조각의 금이 갔을 때, 그 부서진 유리를 접착제로 붙여서 완성된 작품으로 내놓았다. 생성과 소멸, 변형되는 자연의 법칙, 우연이 가져다주는 놀라움을 창조의 과정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프랑스에서 그림을 그리는 여동생의 전시장에 인종주의자들이 나타나 그림에 면도칼을 그었다. 그 그림은 ‘사회복지국’이라는 제목의 유화였는데, 말로 떠들기만 한다는 뜻인지, 긴 혀를 가진 개를 그린 그림이었다. 제프 케인이라는 소장가가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소장하는 그림에 정치적 문제가 드러나 있는 것을 원한다며 인종주의자에 의한 외상이 작품에 정치 사회적 의미를 더한다고 했다.
‘무엇이 예술인가’의 문제는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다.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삶이 예술이다’ 라는 것이다. 그림 안 그리고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자체가 하얀 캔버스에 그려나가는 예술이니까 구태여 캔버스에 물감 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이다.
아침에 일어나 숲을 산보하며 청명하고 신선한 공기를 폐부에 느낄 때, 커피 향의 싸아한 내음에 몸의 감각이 깨어날 때, 느끼고 즐길 때에 삶은 예술의 상태에 있다.
생활의 여러 가지 상황에서 옳은 판단을 해야 할 때 내가 묻는 질문은 나의 마음이 열려있는가 닫혀있는가이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그림이 표현하는 마음의 상태가 무한대로 열려있는가 아닌가를 주시한다. 캔버스의 도처에 열린 상태를 시각적으로 유도하는 빈 곳이 드러나도록 일부러 붓질을 하지 않는 곳이 있고, 모호한 상태로 내버려두기도 한다.
마음속에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확고한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그리면, 그림은 닫힌 그림이 되고 만다. 발견해 나아갈 여지가 없고, 마음속 이미지와 꼭 같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여 결국 재미없는 그림이 되고 만다. 어느 정도의 의도는 있으나,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물감의 속성과 필치가 스스로 그려내는 것을 주시하며 허용할 때에 구석구석 놀라움을 선사하는 그림이 된다.
‘그림이 될까?’를 의문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의심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초심의 상태로 그린 첫 작품이 서툴지만 작품성이 있다. 두 번째로 그리면, 이미 알고 있는 상태를 그리기에 작품에 생명력이 결여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곤 한다. 매 순간이 변화하는 게 삶인데, 그림에서도 점 하나, 선 하나를 그을 때에 이미 전체의 구조가 바뀌기에 마치 장기를 두듯 고심하며 한 수를 두고, 그에 의해 판이 바뀌니 다시 한 수를 두는데 집중하여 그리다 보면, 그림이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어떤 화가는 코끝이 찡해질 때가 그림이 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너무 오래 그림을 잡고 있어서 무르익으면 생생함이 떨어지고, 운이 좋으면 즉시 그 자리에서 작품이 하나 나오는데, 무르익은 그림보다는 생생한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향의 해답은 몇 달 후에 오기도 하는데, 좋은 그림을 보거나 멋진 경치, 혹은 신나는 일이 있어 마음에 용기가 넘칠 때, 즉, 기가 펄펄할 때 한바탕 그려 지난 몇 달간 쌓아온 것을 확 바꾸어버린다. 지리멸렬하게 매일 그리다가 갑자기 전환을 맞을 때가 있는데, 그 신선함은 이미 내 속에 있는 것이지만, 깨어나 기억하는 것이다.
삶을 닮은 예술이 좋은 예술이지만, 시각 예술만이 지닌 조형의 언어를 이해하고 발견해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좀 더 냉철하게 자신의 예술 감각을 바라보아 자신의 한계를 깨쳐나가야 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그리는 게 예술이지만, 개성의 한계에 갇히지 않도록 무한히 열린 세계로 자신을 허용하여 세계에 한 획의 불꽃을 더하는 것이 작업을 하는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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