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목사<보스톤 주님의 교회>
제가 사는 작은 집, 숲 속의 오두막 같은 집 뒤편으로 작은 오솔길 하나가 나 있습니다. 종종 그 길을 따라 산책을 나가는데, 걸을 때마다 생각했던 것은 “이 길은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끝까지 가볼 수는 없었고 언제나 3 mile 남짓한 거리의 ‘Great Meadow’ 주변만 맴돌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봄, 4계절의 노력 끝에 마침내 50대 나이에 자전거를 배워낸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난 알아요. 이 길 끝에는 ‘Trail End’s Cafe’가 있어요.” 자전거 초보 운전자인 아내는 어느 날 혼자 낑낑대며 그 길을 끝까지 달려갔나 봅니다. 아내는 자신이 가 본 그 카페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신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원하면 같이 가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궁금해서 당장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 아내는 가는 길을 훤히 안다는 듯 자신 있게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나이에 아내가 자전거를 타고 앞서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이었습니다.
가끔 혼자 자전거를 타다가 둘이 나란히 달려가는 커플을 볼 때 부러워했습니다. 좌우에 소나무가 열병하고 있는 길을 지나 들판을 달렸습니다. 들판은 멀리서 보면 안개꽃 같이 하얗게 핀 들꽃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세워 놓고 가까이 가보니 안개꽃은 아니었습니다. 메밀꽃이었습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났습니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다음 장터로 옮겨 갈 때 지나가던 길 가에는 달 빛 아래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허생원은 달빛 아래 은하수처럼 펼쳐진 메밀꽃 들판을 지날 때, 주막집에서 만나 동행한 자식뻘의 ‘동이’에게 자신에게 단 한 번 있었던 옛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어쩌면 자기와 같은 왼손잡이 동이가 그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서 자란 핏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메밀꽃 들판을 지나 다시 좁은 숲속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작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이파리 하나 없이 삐죽삐죽 가지만 붙어 있는 나무들이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트레일 끝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이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겠지만, 우리가 달려 온 그 길 끝에 ‘Trail’s End Cafe’가 있었으니 나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Trail’s End Cafe’는 편안히 쉴 만한 자리였습니다. 전체적으로 하얀 빛깔의 실내 벽에는 이 동네 사계절의 자연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며 손님을 시중드는 엄마와 딸은 동네 토박이라 했습니다. 다른 날 나는 아침 일찍 혼자 그곳을 찾았습니다. 통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습니다. 소박한 우리 교회 주보 같은 메뉴 종이 맨 밑에 이 동네 출신의 옛 사람의 어록 한 마디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Walking into the woods is similar to going to the church.”(Henry David Thoreau)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두 가지가 ‘same’이 아니라 ‘similar’라고 말했다면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