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사법재판소‘세이프 하버’무효 판결
▶ 지역 내 미 IT기업 정보수집·전송 막아
연방 환경보호청(EPA)의 리콜명령으로 촉발된 배출개스 조작 사태가 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VW)을 뿌리째 뒤흔들었다면, 이번엔 유럽 최고 법원의 정보공유 관련 판결이 미국 IT 기업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상대방의 대표 산업에 번갈아 일격을 가하며 소리 없는 무역 전쟁이 가열되는 듯한 양상이다.
6일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가 EU와 미국 간의 정보공유 협정인 ‘세이프 하버’가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페이스북과 구글 등 유럽에 진출한 미국 IT 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해 미국으로 전송하던 것이 불가능해지면 당장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업계 관계자를 인용, 이번 판결로 해당 기업들이 지불해야 할 추가비용이 수천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으며,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 클라우드 업체들이 이번 판결로 시장의 10∼20%를 유럽 내 경쟁업체에게 내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IT 업계는 “미국-유럽 간 전자상거래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라며 이번 판결을 맹비난했다.
이번 판결은 공교롭게도 지난달 18일 EPA의 폭스바겐 디젤차 리콜명령으로 인한 배출개스 조작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EPA의 폭로 이후 폭스바겐은 각국에서 조사와 소송 등 후폭풍이 이어지며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두고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미국이 자국 자동차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가혹한 조치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번 사태가 미국에서 먼저 불거졌다는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폭스바겐의 경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명백히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번 정보공유 협정 판결과 성격은 다르지만 이번 두 사례는 모두 미국과 EU의 규제·사법 당국이 상대 업체에 큰 타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또 두 사례 모두 미국과 유럽 사이의 규제 수준의 차이와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화 차이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자동차 배출개스 기준은 미국이 EU보다 더 엄격한데 반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개념은 유럽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철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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