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기도 민화 협회에서 지금 이곳 워싱턴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 민화하면 세화(歲畵)가 연상되고 세화하면 호작도(虎鵲圖)가 연상된다. 호작도란 쉽게 말하자면 호랑이와 까치의 그림이라는 말이다. 이 그림은 지금의 개념으로 연하장 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옛날부터 호랑이는 나쁜 액운을 막아주고, 소나무 위에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 라는 믿고 이 세화도를 그려서 년 초에 인사로 지인에게 선사를 했다. 그래서 세화를 보면 많은 그림들이 호랑이, 닭, 개, 해태 등 액을 막아주는 동물이고 그 중에서도 호랑이가 단연 으뜸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 이곳 워싱턴 지역 극장에서 대호(大虎) 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나보고 보라고 권하는 분도 있다. 이래저래 금년이 병신년 원숭이 해인데 나에게는 원숭이 대신 호랑이 이야기로 시작 되는 듯하다. 하기야 소위 88 올림픽 때에는 호돌이가 정식 마스코트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기념품 가게에만 가면 호돌이 모양의 기념품, 그림, 조각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팔리고 있다. 이제 호랑이는 한국의 심볼이 된듯하다, 마치 미국의 테디 베어 곰 인형같이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 하건대 나는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을 못 마땅하게 생각해 왔다. 고교 시절인지 대학 시절인지 조차 기억이 희미하지만 일본의 특사로 기억 되는데 그 특사인 자가 이승만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서로 물론 말속에 칼을 품고 말이다. 일본 특사가 ‘아직도 한국에는 호랑이가 많이 있습니까?’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 왈 ‘임진왜란 때에 가등청정(가또 기요마사)이 다 잡아 가서 없지요’ 했다고 전한다. 말속에는 ‘너의 한국이 아직도 문명의 세계가 아닌 것 아니냐’ 한 것이고, 이승만 대통령은 너의 일본이 임진왜란 때에 모든 것을 약탈한 악행을 하지 않았느냐’ 라고 응수한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나는 일본 특사가 호랑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그 유래를 생각하면서 꽤나 자존심이 상하고 못 마땅했었다.
사실 한국인은 30-40년 까지도 전쟁(戰爭)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란(亂)이란 단어를 썼다. 예를 든다면 6.25 동란(動亂)이었지 6.25 전쟁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리가 나면 처들어 오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멀리 도망가는 피난(避亂)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깊은 산속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면서 소문을 냈다. 이곳에는 대낮에도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출몰 한다고 말이다. 왜군은 산속 깊이 도망간 피난민들을 쫓아가기 위해서 대군을 보낼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몇 명 보냈다가 호랑이 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놔두었고, 그래서 산속으로 피난간 사람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일본에는 옛적부터 호랑이가 살고 있지 않았기에 신비롭고 두려운 생각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조상들은 호랑이를 좋아 했었던 것 같다는 말이다.
지난 주말에 경기도 민화 협회의 특별전시회에 가 보았다. 예견했던대로 세화전이었고, 여러 모습과 표정의 호랑이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두루 그림을 보고 집으로 오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젊은 시절 치기어린 마음으로 일본 증오를 하며 호랑이를 일본과 연계하면서 싫어했나? 이제 보니 민화 속에 호랑이는 여러 모습에서 이미 한국사람 개개인에 호의적인 이미지로 가슴속에 들어가 있고, 영화 대호에서는 호랑이가 산신령(?)으로 자리 매김까지 되어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사람들의 호랑이에 대한 인식인데 말이다.
이제 원숭이 해인 병신년 시작이다. 한국은 대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호랑이 담배 피던 나의 어린 시절의 어쩌면 열등감 속에서 가졌던 일본 증오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본 위에 우뚝 설 마음의 자세로 어려움들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호방하고 진취적이고 늠름한 기상의 호랑이, 이 호랑이 사랑으로 금년을 열어보자. 인왕산에 호랑이가 나타나려나?
<이영묵 전 워싱턴 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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