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미 장 ‘정원’
여름이 끝날 무렵 아치스에 갔습니다. 햇살은 무방비로 내리꽂혀 피부를 뚫는데, 바람이 건조하고 서늘하여 견딜만했습니다. 델리키트 아치를 지나 ‘악마의 정원’으로 접어든 뒤, 나는 에드워드 애비가 초청장에 적은 길을 따라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붉은 바위 사이 소로를 따라 두 시간은 족히 걷고 나서야 무덤에 닿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No Comment’라고 새기고 있었습니다. 도마뱀이 머물던 향나무 그늘에 앉아 그 무심한 작업을 오래오래 지켜보았습니다. 내가 물통을 건네자, 그가 술은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해간 코냑을 배낭에서 꺼내, 나란히 한 모금씩 나눠 마셨습니다. 지나가던 사막 토끼에게도 한 잔 주었습니다. 외롭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혼자 놀기의 명수라 괜찮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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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아나키스트라고 불리었던 급진적 환경주의자 에드워드 애비와 시인의 만남이 인상적이다. 여느 무덤과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애비의 무덤에도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황량한 풍경은 작은 생명들의 등장과 한 잔의 코냑으로 인하여 풍요로워진다. 이 풍요가 바로 인간은 왜 혼자 놀기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인 셈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대자연 속으로 초대되어 온 시인. 사막의 햇살만큼이나 명수들의 만남이 가볍고 깊고 또 허무하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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