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출신 연방 상원의원인 마르코 루비오의 외할아버지는 페드로 빅터 가르시아다. 1956년 쿠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다시 쿠바로 돌아갔다. 1959년 쿠바 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 쿠바에서도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지자 1962년 다시 미국 입국을 시도했다 밀입국자로 몰려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 때 그가 추방됐더라면 마르코의 어머니가 마르코의 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마르코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이민국 관리는 마음을 바꿔 추방을 유예했고 마르코의 외할아버지는 다시 영주권을 신청해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수 있게 됐다. 세상일은 역시 인간이 좌우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마르코의 아버지는 한 때 라스베가스에서 바텐더로 일했고 어머니는 호텔에서 청소 일을 했다.
마르코는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학교를 다녀야 했고 플로리다 대학과 마이애미 로스쿨을 졸업할때까지 10만 달러의 빚을 졌다. 그는 이 빚을 40이 넘은 2012년에야 다 갚았다.
그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1999년 플로리다 주하원의원에 도전해 당선됐으며 2005년에는 34살의 나이로 플로리다 역사상 첫 쿠바 이민자 출신 하원의장이됐다. 2010년에는 연방 상원의원선거에서 현직 플로리다 주지사인 찰리 크리스트와 싸워 이겨 공화당 후보 지명을 따냈고 11월 본선에서 승리해 첫 쿠바계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이때부터 루비오는 공화당의 ‘뜨는 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6년 대통령 선거 시즌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루비오는 유력한 대선 후보의 한 명으로 꼽혔다. 그의 삶 자체가 ‘아메리칸 드림’의 모델일 뿐 아니라 대선 승리를 위해 백인 보수표 뿐만 아니라 소수계와 이민자까지 지지자를 확장해야 하는 공화당으로서는 루비오야말로 새 공화당의 상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루비오가 15일 열린 공화당 대선 플로리다 예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하자 깨끗이 후보직을 사퇴했다. 자신의 고향인 플로리다 마저 내주고는 당내 지명을 따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너무나 자명했기때문이다.
올 초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테드 크루즈와 트럼프에 이어 3등을 했을 때만도 루비오에게는 희망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뉴햄프셔 예선을 앞두고 보여준 재난에 가까운 토론으로 지지도는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참패하며 젭 부시가 사퇴하자 그 표가 몰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또한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미네소타와 푸에르토리코를 제외하고는 참패에 참패를 거듭하다 플로리다에서 마저 지자 더 이상 해 볼 곳이 없어진것이다.
이번 그의 패배는 사실 그의 잘못 때문이라기보다는 공화당을 강타한 트럼프 돌풍 때문이라 보는 것이 옳다. 분노와 불안에 찬공화당 유권자들이 올해 원한 것은 루비오의 밝은 메시지와 성공담이 아니라 트럼프의 편견과 대중 선동이었다. 그러나 아직 45세에 불과한 루비오의 앞길은 창창하다. 이번 패배를 교훈삼아 더성숙하고 통 큰 정치인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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