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버린 콘크리트 더미 사이에서 고양이
들이 짝짓기를 한다. 순식간에 장르가 바뀐
다. 에로다, 며칠 전까지 이곳에서 벌어졌던
중장비들의 공포는 이미 잊혀졌다. 족보 한
장이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을까.
몰락은 사족 없이도 눈부시다. 내밀한 서시
가 창자 밀려 나오듯 밀려 나와 있는 몰락은
눈부시다. 미리 약속하지 않았으므로 몰락
은 눈부시다. 그리고 그 몰락의 현장에서 벌
어지는 짝짓기란,
무거웠던 것들이 모두 누워버린 몰락의 한
가운데서 고양이의 배 속에 담겨 날아온 씨
앗들도 싹을 틔우리라. 똑바로 서 있는 별들
의 모습은 고양이들에게 더 이상 기억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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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라진 뒤, 지구가 얼마나 빨리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가를 그려낸 다큐멘터리 필름이 떠오른다. 작은 동물들은 건물을 철거하는 굉음으로 인해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하지만 그 순간은 가고 폐허 위에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짝짓기를 하는 고양이들. 두려움을 잊기 위해 짝을 짓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공포를 잊은 것일까. 머지않아 필시 몇 배 더 큰 건물을 짓는 소리가 요란할 텐데...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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