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 위인’,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의 반열에 오를 인물’.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평화대통령’이라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붙었던 화려한 수사들이다. 반 총장에게 갖는 한국인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다. 반 총장의 생가마을인 충북 음성군 행치마을을 둘러보면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복원된 초가지붕 생가와 UN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기념관, 평화랜드까지 지나침이 엿보여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는 생존인물 중 유일하게 ‘세계위인 49인’(한국 대형서점에서는 반 총장을 세계 위인 49명 중 한 사람으로 올린 위인전 도서가 시판되고 있다)에 오른 인물이 아니던가.
사정이 이러하니 유수의 언론이라는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당혹스럽고 참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장 우둔한(the dullest) 최악의 총장 중 한 사람(among the worst)”, “최소의 공통분모“(lowest common denominator, 번역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의 한 매체는 이 구절을 ‘가장 자질이 부족한 후보’로 번역하기도 했다). 반 총장에 대한 이 매체의 평가는 언론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며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이었던 반 총장이 세계 유수 언론으로부터 왜 이처럼 참담한 평가를 받게 됐을까. 이코노미스트가 유독 편파적인 평가를 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모른 체 외면해왔던 것은 아닌지 성찰하면 이 지적이 놀랍지만은 않다.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경위를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지적한다. “반 총장은 유엔이 가지는 결함을 몸소 보여주는 예이다.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가 보기에 특별히 불쾌할 것이 없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은 아시아인을 원했고, 미국은 그를 자기편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러시아는 그가 뚜렷한 색깔이 없어 받아들일 만 했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 하거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발휘할 인물이었다면 애시 당초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없었다는 우회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부정적 평가가 처음은 아니다. 특히, 그를 ‘미국 셔틀’이라며 경원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무능함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슬람권 최악의 모욕인 ‘신발투척’을 당한적도 있다.
하지만 유엔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처음부터 실패를 예견했던 언론도 있었다. 2007년 뉴스위크는 '새 유엔 총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란 기사에서 반 총장이 관료주의와 끊임없이 싸워 온 투사이지만 결국에는 패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어눌하고 절차나 의전에 집착하며 자발성이나 깊이가 없다”는 지적은 몹시 아프다. 퇴임을 앞둔 반 총장이 한국 정치에 욕심을 내기보다 재임기간 내내 강대국 눈치 보느라 못 다했던 ‘분쟁 지역 평화문제’에 천착해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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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정책사회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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