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앞 사거리에는 약국과 고만고만한 점빵들이 있고, 자전거포와 선술집, 미용실, 시계점을 지나면 면사무소와 지서, 그 옆에 ‘의용소방대(義勇消防隊)‘가 있었다. 지금처럼 불 자동차도 아니고 소달구지 뒤에 묶어서 끌고 다니게끔 되어 있는 빨간 색칠한 물탱크 트레일러와 역시 빨간 페인트 된 곡괭이와 삽, 쇠스랑 몇자루가 소방장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만화 같은 ‘소방대‘가 있었다. 거기에는 상근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옆에 있는 지서주임이 관리를 하는 듯이 보였지만 너무 어릴 때여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나중에야 비상근 자발적 민간소방조직으로 조례(條例)에 의해 운영된다는 걸 알았다.
2층 건물이라고는 두 개밖에 없었으니 사다리라는 것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형색은 비록 초라했지만 근동에 불이 나면 불을 끄는 데에는 ‘아주 용맹했다.’ ‘오포소리’만 났다하면 평소에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분들이 하던 일들을 멈추고 순식간에 모여들어 불을 끄고 뒷정리들을 도왔다.
1592년 ‘임진왜란’과 ‘삼전도의 굴욕’으로 잘 알려진 1636년의 ‘병자호란’은 동시대의 같은 외침이었지만 백성들의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는 ‘총화(總和)’라는 관점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그 차이가 컸다. 임진왜란은 적의 침략이 7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결국 승리하여 격퇴하였지만 병자호란은 채 2개월도 못 버티고 ‘굴욕적 항복’을 하고 만다.
임란 때에 백성들이야 도륙을 당하던지, 의병을 결성해서 나라를 지키든지는 선조등 나랏님들은 피난가기에 바빴고, 의주를 지나서 압록강 너머까지도 서슴없이 피난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임란때에 백성들과 이순신등이 몸을 바쳐 나라를 지켜내고 나니 피난길에서 돌아오자마자 논공행상에 눈이 멀고, 뒤를 이은 광해폭정으로 백성들은 나라에 대한 허탈감과 무기력이 극에 달했을 터이다. 국가의 기강이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거렸고, 뒤이은 병자년에 청나라가 침공해 오자 이번에는 남한산성으로 강화도로 피난 다녔다. 또 다시 의병들이 나라를 지켜 주리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렇게 백성들은 어리석지를 않았다.
나랏님들이 국가와 백성을 어떻게 대했고, 국난(國難)에 어떤 자세를 보여주었느냐에 따라서 그 어두운 시절에도 백성들은 역사의 정통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2014년 4월16일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다. 그 사고 난 배에서 단 한사람도 구해내지를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국민의 의무와 국가의 책무’ 같은 걸 궁상스럽게 재론해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침몰한 배에서 한사람이라도 살려보겠다고 전국의 민간 잠수사들이 진도로 몰려들었다. 불났는데 불부터 끄자는데에 민(民)이 어디있고, 관(官)은 무엇이며, 군(軍)이면 어떠랴, 질서가 없으면 질서를 잡는 것도 나라에서 할 일이고 또다른 희생이 발생한다면 그에 따른 희생에 대한 책임과 보상도 ‘나라’의 몫이다.
사고 한달 뒤에 생존자 구출도 못하고 시신이라도 수습해보자고 했던 민간 잠수사 한분이 사망을 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잠수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감독관 역할을 했던 같은 민간잠수사 공모씨에게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1년을 구형해 버렸다. 열악한 전투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던 ‘이순신’을 감옥에 가둬버리는 천인공노할 일을 이 시대, 이 나라는 국민들에게 자행해 버린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9월 국감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서 25명 민간 잠수사를 대변했던 김관홍 잠수사에 의해 생생하게 밝혀졌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이제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라. 정부가 알아서 하라.’
그가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본업을 그만두고 대리운전으로 연명하다가 지난 6월17일 세상을 떠났다.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가면 눈에 띄는 글이 크게 돌판에 새겨져 있다.
‘나라는 망해도 의병은 죽지 않는다.’ 이 글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제발 나랏일 맡지 말라.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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