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라 모더존 베커, ‘어머니와 아이’ 1906년
화실에 가기위해 아침마다 내리는 프리웨이 출구 신호등 앞에는 ‘이라크전 참전용사 배고픔’이라는 팻말을 들고 늘 같은 사람이 서있다. 전쟁의 트라우마가 결국 그들을 사지로 내몰아 많은 홈리스 피플이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약간의 도움에 그는 거수경례를 한다. 차 속에서 몇 푼을 주고 가는 행위가 경례를 받을 만하지 않기에 그런 세상이 서글퍼 왈칵 눈물이 솟구친다. 같은 장소에 또 한명의 젊은 여성이 서 있는데 그녀는 좀 특이하다. 젊고 피부가 맑은데 길거리에 서서 구걸을 하면서도 늘 웃고 있다. 그녀가 든 팻말엔 ‘임신 중,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쓰여 있고 아이를 위해서 못 할 것이 없다는 듯 표정이 밝아 그녀의 용기에 감탄을 하곤 한다.
좋아하는 그림 중에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그림<사진>이 있는데 독일 여성인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가 그린 그림이다.
어머니의 몸짓과 표정이 후덕하고 선이 굵어 마치 멕시코 벽화에 나오는 인디언 어머니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인종을 초월하여 어느 인종의 어머니일수도 있는 튼튼하고 따뜻한, 거대한 어머니의 몸체 옆에 역시 튼튼해 보이는 아이가 안겨있다. 흰빛 담요는 영원을 뜻하듯 모서리가 없이 화면 끝으로 연장되는데 깨끗하고 편안한 흰색조의 붓 터치로 그려져 있다.
편안하고 튼튼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이 그림이 좋아서 그녀의 다른 그림을 찾다가 파울라 베커가 아이를 낳고 나서 서른 한살의 나이로 요절했고 이 그림은 몸이 약한 그녀의 희망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원만한 세상과 건강한 몸과 마음의 어머니 모습을 그렸지만 어머니의 얼굴엔 수심이 드리워져 있다.
시인 릴케의 아내는 화가였는데 아내의 친구인 파울라 베커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여 ‘어느 여자 친구를 위하여’ 라는 제목의 진혼곡을 썼다. 예술가로서 탁월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생명의 탄생을 위해 모든 힘을 써버리고 죽음을 맞은 친구의 죽음이 주는 고통과 안타까움을 쓴 진혼곡은 몇 번이나 책을 놓았다가 다시 읽어야 할 만큼 내용이 무겁다.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예술가로서의 갈등이 그 주제이다. 삶과 위대한 예술 사이에 있는 해묵은 적대감을 언급하는 진혼곡을 읽으며 예술과 삶, 사랑과 예술의 조화의 어려움을 겪으며 정진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삶에 새삼 경의를 느낀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어머니인 여류화가들의 작업엔 여성만이 지닌 감수성과 세계관이 있다. 남성 위주의 예술계에서 다른 시각, 다른 방식으로 작업에 접근하는 여성들의 작업이 어떻게 다른가를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여류화가 특유의 감각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원시시대의 사냥이 남성의 일이라면 여성은 음식하고 저장하고 모으는 일을 했고, 그 오랜 습성이 예술에도 보이지 않는가 싶다. 아이를 탄생시키기에 원형적 감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무엇보다도 여성이 창조하는 최고의 예술품은 정성을 다해 키운 아이일 듯하다.
아이를 키우며 예술에 정진하는 수퍼 우먼들인 화가 친구들의 호소를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경청할 생각이다.
<
박혜숙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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