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부터 읽어주기 시작한다, 호머, 셰익스피어, 초서. 그는 지겨워하면서 로맨스 소설을 읽어주길 원한다. 열정의 바다를 떠 흐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는 자신이 시력만을 잃은 것이 아닐 것 같은 불안에 잠긴다. 세상엔 그가 모험하지 못한 감성의 대륙이 있다는 것.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언어를 볼 수 있다는 듯 입술을 움직인다. 서로를 뜨겁게 껴안는, 그가 연인이기라도 한 듯.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은 듯. 그녀 위에 그가 몸을 누이기라도 한 듯. 그는 천천히 읽어달라고 속삭이듯 말한다. 이곳에 오기까지 참으로 먼 길이었다. 여기, 그는 잠시, 머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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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 읽어주는 이(The Reader)’가 생각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본성과, 전쟁과 죄와 생존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누군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잃어버린, 혹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을 상상으로 체험하는 눈먼 자의 모습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언어는 인간의 영혼이며 또 육체가 아닌가. 인간이라는 모든 체험의 복합체가 바로 그것 아닌가. 눈먼 자를 통해 눈뜬 이들이 다시 보는 세상, 그 원초적 욕망의 세계가 순수하고도 허무하여 아름답다.
<David Shumate, 임혜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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