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Biz 리더 <17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 패션·시계·화장품·주류 등 70여개 브랜드 한손에 거머쥐고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LVMH 제공]
1970년 뉴욕 JFK 공항, 비행기에서 내린 프랑스 청년은 택시에 올라탔다. 그에겐 첫 미국 방문이었다. 기사가 물었다. “프랑스인이시군요.” “네. 맞아요. 프랑스에 가보신 적 있어요?”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 프랑스 대통령이 누군지는 아세요?” 택시기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하지만 크리스챤 디올은 알죠.” 청년은 생각했다. 디올 같은 국제적 브랜드야말로 진정한 자산이라고. 그런 브랜드를 발판으로 삼으면 뭔가 큰 사업을 벌일 수 있겠다고. 예술과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에콜 폴리테크니크(프랑스 국가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의 이공과 계열 대학) 학생은 14년 뒤 결국 디올을 수중에 넣고 다시 5년 뒤 명품제국 LVMH(모엣 헤네시·루이 비통)의 수장이 된다. 그는 ‘명품의 황제’ 또는 ‘캐시미어를 두른 늑대’라 불리는 전 세계 명품업계의 제왕 베르나르 아르노(68)다.
LVMH는 오늘날 럭셔리 산업에 있어서 히말라야 산맥 같은 기업이다. 루이 비통·디올·펜디·지방시 같은 패션 브랜드에서 불가리·쇼메·위블로·태그호이어 등 시계·주얼리 브랜드, 겔랑·겐조 등 화장품, 모엣&샹동·돔 페리뇽·샤토 디켐 등 주류 브랜드까지 70여개 명품 브랜드가 한데 모여 있다. 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438억달러로 구찌·이브생로랑·보테가 베네타 등을 보유하고 있는 케링(Kering·145억달러), 카르티에·반 클리프 앤 아펠·몽블랑 등으로 유명한 리슈몽(Richemont·130억달러) 등의 경쟁사를 크게 앞섰다. LMVH의 대주주이자 회장, 최고경영자(CEO)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이 회사가 처음 설립된 1987년 17억달러에 불과했던 연 매출 규모를 30년 만에 25배로 키웠다. 아르노 회장의 재산은 630억달러로 포브스가 꼽은 ‘세계 최고 부자’ 7위에 올라 있다. 프랑스인 가운데선 가장 높은 순위다.
■30대 부동산 사업가, 명품 제국의 황제가 되다
아르노는 1949년 프랑스 북부 소도시 루베의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는 패션이나 예술보다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였다. 진학도 이공과 계열로 했다. 그러나 아르노는 아버지처럼 사업에 뜻이 있었다. 졸업 후 아버지의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시작한 아르노는 8년 만인 1979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1981년 프랑스의 정권이 바뀌면서 그의 삶도 변화를 맞는다. 미테랑 대통령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경제정책에 불안감을 느낀 아르노는 미국행을 결심한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르노는 미국에서 부동산 사업을 추진하는 틈틈이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던 그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디올의 모기업인 부삭이 부도 직전의 위기에 몰려 정부의 수혈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디올을 시발점으로 잠재력이 큰 저평가 기업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부삭을 인수한 아르노는 본격적으로 냉혹한 사업가 기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디올과 봉마르셰 백화점을 제외한 사업분야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직원들을 대량 해고했다.
2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은 그는 이를 발판 삼아 LVMH로 눈길을 돌렸다. 아르노는 불과 마흔의 나이에 LVMH의 최대 주주이자 그룹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아르노의 LVMH 정복은 1980년대 후반 프랑스 자본주의가 폭발적인 부흥을 하던 시기에 벌어진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성공의 첫째 조건은 엄격한 품질관리
아르노는 LVMH 회장의 자리에 오른 뒤 럭셔리 브랜드를 인수하는 데 집중했다. 탄탄한 자금력을 동원해 겐조, 지방시, 겔랑, 마크 제이콥스, 쇼메, 세포라, 펜디, 도나 카란, 태그호이어, 불가리 등을 속속 수중에 넣었다. 인수합병(M&A)을 통한 공격적인 성장 전략은 LVMH가 럭셔리 업계에서 1인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잇따른 적대적인 M&A로 인해 ‘기업 사냥꾼’ ‘캐시미어를 두른 늑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기업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몰락을 의미한다”며 앞만 보고 나아갔다.
명품 브랜드들이 LVMH에 합류하면서 회사는 급성장했다. 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기업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 어느 순간 통제력을 잃고 휘청거리기 마련이지만 LVMH는 예외였다.
중앙집권적 경영 방식이 아닌 분권화된 브랜드 전략이 비결이었다. 아르노는 “중앙집권 방식은 기업가정신을 파괴한다”며 각 회사마다 적임자가 경영을 도맡아 책임질 수 있게 해줬다. 그룹 경영진은 브랜드 책임자들과 함께 전략을 이끌어내고 그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 데 집중했다.
아르노가 그룹 차원의 전략에서 다섯 가지 원칙으로 꼽는 것은 상품의 질, 창의성, 이미지, 기업정신 그리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철저한 품질 관리와 독창적인 인재 발굴은 그룹 전략의 핵심이다. LVMH 매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인 루이 비통은 치밀하게 짜인 프로그램으로 교육된 직원들이 자체 공장에서 수공업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아르노는 루이 비통의 성공 요인을 “거의 완벽에 가까운 품질을 지속적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최고급 와인인 샤토 디켐도 마찬가지다. 수확된 포도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 해에는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훌륭한 인재가 기업의 생사를 결정한다
아르노 회장의 창의적인 인재 기용은 LVMH가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는 원천이 됐다. 마크 제이콥스(루이 비통), 알렉산더 매퀸, 리카르도 티시(이상 지방시), 존 갈리아노(지방시, 디올), 피비 필로, 마이클 코어스(이상 셀린느), 칼 라거펠트(펜디)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아르노는 기업 성공의 열쇠는 규모가 아니라 재능이라고 강조하며 “훌륭한 재능을 갖춘 인재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경영진부터 말단 직원까지 해당하는 이야기다.
아르노 회장은 브랜드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층을 확장하는 데도 천부적이었다. 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에 흠을 내지 않는 선에서 서민층도 고가의 브랜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비교적 저렴한 액세서리 제품을 내놓았고, 유럽 중심이었던 시장의 한계를 벗어나 중국, 몽골, 브라질 등 신흥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지난해 LVMH의 전체 매출에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의 비중은 2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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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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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25불에서 5천불 사이의 사람들은 가랭이 찢어진다. 그래서 피흘리며 사는 명품족들이 느나보다.
25불 짜리를 5천불을 내고 구입하는 것도 능력이다.
25불짜리를 5천불애 파는 것이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