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저 집 어딜 이사 가나. 소리 소문 없이.”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닷없이 이웃집 앞에 ‘세일’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몇 년 전 남편이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을 때 주위에서 모두들 큰 집에 굳이 살 필요가 있느냐고 했지만, 자신은 정들고 넓은 이 집이 좋다고 고집하던 분이었기에 궁금증이 발동하였다.
이유인즉 이층 계단에서 떨어져 부상으로 고생한 뒤부터 이층으로는 올라갈 수 없어 계단 없는 집을 찾아 간다고. 그런 일이 있은 몇 주 후 산책길에 가끔씩 들리는 집 앞에도 연이어 ‘세일’ 간판이 붙어있다. 집수리를 하는가 보다고 무심코 지나쳤던 지인 한 사람도 집을 팔고 이사 할 계획이란다. 두 내외가 유지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조금씩 마음을 조이게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십년 넘게 한 동네에서 알게 모르게 정이 든 분들이라서 동네가 썰렁해 지는 것이 아닌가 무척이나 섭섭해진다.
이사 한번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젊음이 지나고 나면 흔히 시니어들이 찾는 곳이 단순한 구조의 아파트 아니면 콘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대화가 그리울 때면 종종 우리 집을 찾아오는 분이 있었다. 현재 노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 분의 말씀. “멀지 않아 두 분도 아들내외한테 이 집을 물려주고 노인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어 있어요” “아닌데요. 우리는 끝까지 이 집에서 살 거예요” 웃으면서 그 말에 응수하였는데 집 청소와 잔디밭 관리가 나날이 힘들어지니 왠지 마음이 착잡해지려 한다. 우리 또래의 이웃집들이 하나 둘씩 간편한 생활을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동네를 떠나는 것을 심심찮게 지켜보게 된다.
주위의 상황에 잠시 마음이 술렁이었지만 워낙 굳건한 내 집 지키기에 다져온 내공이라 그저 흘려듣고 말았다. 시니어 센터에 나오는 어느 전직 의사 한 분은 한인지역을 위해 봉사도 하며 나름대로 노년을 편안히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 역시 살고 있던 집을 자녀에게 양도하고는 유료 양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알고 보니 두 내외가 조금씩 나빠진 건강 때문에 모든 편리한 의료시설을 두루 갖춘 아파트형 양로원으로 이사했단다.
한계에 부딪쳐 오는 나이를 나 역시도 경험하고 있지 않은지 회의가 들기 시작할 무렵 일본 여성작가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시대를 초월해서 흔히 알면서도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우리 세대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일종의 행동 지침서 같은 내용이 마음에 와 닫는다. 어차피 남은 인생 계획대로 살아지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무니 내 주변을 새삼 둘러보게 된다.
집안에 잔뜩 끼어있는 삶의 무게를 조금씩 줄여 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두가 추억이 깃든 물건들인데. 그래, 서둘지 말고 천천히….
어느 날 유치원을 다녀 온 손녀가 사과를 먹고 남은 까만 씨를 주면서 “할머니, 사과 씨를 심어 주세요” 한다. 둘이서 화분 흙 속에 씨를 묻고 물을 주면서 “봄이 되면 싹이 틀 것이니 기다리자”라고 했는데, 봄이 되자 앙증스럽게 연한 새싹이 고개를 들고 가는 줄기에 잎까지 따라 나온다. 신기하게 들여다보며 기뻐할 손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 역시 언젠가 때가 되면 앉은 자리 양보하듯 다음을 위해 툭툭 털고 일어나야지. 새싹을 키우고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빨간 열매를 맺기까지. 모든 일상의 사소함까지도 보듬고 사노라면 지금 이 순간도 잠시 잠깐 지나고 나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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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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