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을 편히 쉬는 토요일 아침이면 으레 그러하듯, 한 잔의 커피를 들고 꽃이 핀 뒷뜰 의자에 굽어지고 있는 등을 기대어 신문을 넘기면서 간밤의 소식과 시(詩)를 읽는 그 시간은, 천국은 알 수 없는 피안(彼岸)이 아니라 능소화가 만발한 뒷뜰의 의자에 있구나 하는 마음이다.
파란 풍선을 닮은 동그란 땅별(지구) 위에서 캄캄한 우주 어딘가로 떨어지지 않고 물 묻은 바가지에 깨알 달라 붙듯, 수십 층의 빌딩과 함께 서캐처럼 하늘과 땅의 틈새에 붙어살고 있는 토요일 아침, 시간여 남짓한 안양(安養)은 절대적인 나만의 시간인듯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나그네(세월)가 남기고 가는 파사(婆娑)와, 소소한 가을 바람에 가지로 돌아갈 수 없는 떨어지는 마른 잎새에도 나는 여유롭고 오붓했다.
토요일 아침 커피 맛이 평상시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세치 혀의 간사함을 느끼며, 새벽녘 안개에 인간사의 풍진을 씻은 듯 젖어 있는 꽃들과 함께 신문을 읽고 간밤에 접어둔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은, 그 누구에게도 주기 싫은 나 범생이의 천상천하(天上天下)에서의 유아독존(惟我獨尊)이라고 생각 한다.
나는 문득 어디에선가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듯한 징소리, 먼 산에서 들려오는 산역(山役)의 북 소리에 취한듯 몽환(夢幻)의 깊은 강 속으로 빨려들어 내 스스로의 허물과 자책을 동키호테 형(型)의 푸닥거리를 한다. 무명초(머리칼)가 허옇게 되도록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저 꽃들은 피어서 더러운 세상을 닦아 주는데, 나는 옆의 개가 짖으면 따라 짓기만 했지 세상은커녕 나 자신의 거울에 걸레질 한번이라도 했던가?
무엇이 이토록 이지(理智)에 욕심이 많아 늘상 허기만 지고 세상은 늘 불공평해서 잘 사는 나라의 개 고양이는 살이 찌는데 가난한 나라의 어린애들이 굶어 죽는 것도 “하나님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에 속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수많은 여자들 앞에서 옷을 잃어버려 벌거벗은 몸을 감추지 못해 잠을 깨어서도 부끄럽고, 정글 속에서 적군들은 몰려오는데 내가 쏘는 총알은 겨우 총구 앞에 떨어지거나 노리쇠는 잼이 되어 애를 쓴다.
들숨과 날숨이 밀물과 썰물 같다면 어서어서 오고 어서어서 가거라 이 추한 늙음아! 술과 장미의 세월과 갈등의 삶은 모두 다 허허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세태(世態) 모두 다 소소(小小)한 군더더기! 새벽 안개에 젖어 고개 살짝 숙인 저 꽃 앞에서 어쩌다가 세상에 온 것이 부끄럽고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처럼 작아짐을 느낀다.
세염(世染)을 세정(世淨)해주는 비껴 불어오는 바람과, 세우(細雨)만도 못한 나 자신,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칠생(七牲)중 이미 망처 놓은 일생(一生)을 거의 거의 다 살았으니 모든 희망을 내려놓을까? 어차피 틀려먹은 삶인데 본체만체 그냥 내버려둘까. 이 모든 갈등이 빚어내는 동키호테 형의 생각은, 빛보다 빨라서 겁(劫)과 찰나(刹那)사이를 오고 가며 스스로내 그르침과 무능을 자책하여 고소를 하고 허물을 뉘우치는 최후 진술을 한다.
아침 커피와 짝궁인 토요일 아침 신문은 갈등과 애증으로 얼룩진 나의 백수풍진(白首風塵)을 곰삭여 주고 마음과 몸을 편히 쉬게 했는데 아! 아쉽다! 토요일 아침 신문 한장이 이름 없는 범생이의 오붓한 시간을 앗아 가다니! 천하 여장군이 애를 낳을 때까지 신문이 없는 토요일이라도 나의 푸닥거리는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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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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