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던 햇살도 한풀 꺾이고 여름과 작별하듯 아들 식구와 함께 늦은 휴가를 떠났다.
여느 때와 달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가는 여행에 신이 났던지 들뜬 기분으로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작은 손녀, 돌핀의 입을 빼 닮은 큰 손녀의 조잘거림은 그칠 줄 모른다. 아들 둘만을 키워본 터라 두 손녀의 재롱이 또 다른 재미를 줄 것만 같다.
출발할 때 맑던 하늘이 오션시티에 가까워질수록 햇살을 가린 뭉게구름이 오락가락 변덕을 부린다. 서둘러 호텔에 짐을 풀고 바닷가로 나가보니 이미 해변에는 집채만한 파도가 어른 키만한 모래 턱을 만들어 놓았다.
흰 물거품을 물고 오는 파도와 거센 바람에 해수욕복을 걸친 사람들이 파라솔 대신 의자에 앉아 바람에 날리는 무수히 많은 잔모래로 해수욕을 대신하고 있었다. 모래 절벽 아래에는 아이들이 곡예하듯 밀려드는 파도도 아랑곳없이 아슬아슬하게 물장난을 친다.
서핑을 하는 건장한 두 청년이 파도타기에 이골이 난 듯, 시원한 물줄기를 가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미끄러지듯 유유히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아찔한 묘기가 신기하게도 영화 속 한 장면 그대로다.
손녀들이 발자국으로 모래 위에 이리저리 무늬를 그리며 재잘거리고 뛰노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지만, 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서양 바다 저 끝에서 밀려오는 거센 파도 소리가 언젠가 골웨이(Galway) 해변에서 느꼈던 성난 파도와 모래 바람을 그대로 연상케 하였던 일이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일년간 영국에 체류할 당시 시간을 내어 케네디 방문 기념비가 있는 아일랜드 최서단 골웨이 바닷가를 찾았던 적이 있다. 생소한 나라 그 중에서도 작은 소도시 해변을 기차를 타고 도착해 보니 잿빛 하늘과 성난 파도만이 적막을 깨트리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 기념비 앞에서 인생의 무상함에 잠겨 보는 것도 잠시, 1958년 그가 쓴 ‘이민의 나라’란 책에서 이민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처절했던 그 당시 아일랜드의 생활상을 짚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어두운 하늘과 거센 바람이 잦아들지 않아 차가운 바닷물에 해수욕은 포기하고 모래사장 근처에 있는 이곳의 명소 해변의 보드워크를 거닐기로 하였다.
보드워크에는 아예 해수욕을 포기한 많은 인파가 넘쳐나고 있었다. 다리도 쉴 겸 벤치에 앉아 뭇사람들을 구경하노라니 발코니 없는 아파트는 매력이 없다던 미국 사람들의 농담처럼 간편한 옷차림의 남자들이 하나같이 불룩한 배를 안고 가는 모습이 마치 만삭의 여인네 배를 닮아 있어 그들만의 고민을 엿보았다고나 할까.
마지막 코스인 어린이 놀이터에서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고공의 놀이기구에 손녀들이 아들 내외와 함께 올라타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스릴에 재미를 느낀 큰 손녀가 이번에는 할머니와 한 번 더 타 보고 싶다고 내 손을 잡아끌며 떼를 쓴다. “할머니는 제발 빼다오….”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을 바라보노라니 케네디가 1963년 골웨이 방문 때 행하였던 연설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골웨이 해변에서 저 멀리 대서양을 바라보면 보스턴 해변이 보인다”고 했다는데 어쩌면 이곳 오션시티 해변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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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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