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동네 아줌마들이 툭 하면 하던 욕 중의 하나가 ‘화냥년’ 이었다. 그 욕의 근원이 잘 알다시피 환향녀(還鄕女)로 병자호란에 끌려갔던 포로와 노예들 중에서 몸값을 치르고 돌아오거나 도망 또는 버림받는 등으로 조선으로 돌아오는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자호란의 피해는 참혹함을 넘어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인구는 380만 명이었다. 그런데 포로 또는 노예로 끌려간 인구가 50만 명이라고 하니 어린아이 노약자를 빼면 성인의 30% 이상이 끌려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에서 돌아온 소위 환향녀들이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늘의 도성 서북쪽인 불광동 즈음에서 살아야 했다. 그것도 ‘떼놈에게 더렵혀진 몸 무슨 염치로 살아서 돌아왔느냐’ 하면서 욕과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말이다.
더 나아가 병자호란이 1636년에 일어났고 나의 어린 시절이 1950년도 초이니 그 말은 300년 이상 화냥년이란 욕이 이어져 왔고 그러한 욕을 백성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국민적 정서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일제시대 전쟁 중에 소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끌려갔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돌아온 그분들은 화냥년이란 멸시와 욕을 먹을까봐 숨 죽이고 조용 숨어 살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그분들이 돌아온 지 46년이 지난 후 비로소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그 끔찍한 비극을 용감하게 밝혔고, 그리고 다행스럽게 국민의 의식수준이 진일보하여 그분들을 동정, 위로 격려 그리고 일본 군부의 만행을 규탄하게 된 것이 현 상태인 것이다.
최근 수도 워싱턴 인근 애난데일에 설치된 소녀상에 가 보았다. 이 설치를 보면서 나는 소녀상이 일본을 향한 만행규탄에서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인권보호의 상징으로 진일보 한 것에 노력해온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론들은 일본기자들까지 기념식에 와서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을 마치 한일 대결에서 승리한 것처럼 대서특필에 마음 또한 가볍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소녀상 앞에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만일 UN 청사에 인물 조각을 각 나라에서 보내서 세운다 했을 때를 가정해 보았다. 미국은 마틴 루터 킹,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넬슨 만델라, 인도는 간디, 프랑스는 잔 다르크, 그렇다면 한국은 무었을 보내야 했을까? 소녀상이 아니라 유관순 열사가 어떨까? 과거에 우리가 못나서 외침으로 슬프고 처참히 당한 것 보다 나라를 위하여 용감하게 목숨을 내건 유관순 열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나라의 프라이드만 생각 하는 것일까?
이제 소녀상을 보면서 나는 우리 모두의 마음도 이제는 일본 때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한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의 상징 그것도 좋지만 우리가 스스로 반성을 해야 할 관점으로서의 소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일제 만행을 규탄하고 사과와 보상을 하라는 그것 좋다.
그러나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한국 사람들은 소녀상을 가슴속에 품고 다시는 화냥년이나 위안부 같은 단어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깨어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또 하나의 소녀상이 미국 어느 곳에 세워지기 전에 한국 국회 의사당, 청와대 앞에 세워서 위정자들이 매일 매일 마음을 다짐하라고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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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묵 / 포토맥 포럼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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