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을 정취를 생각하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진 가을 운동회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작은 마당처럼 보이지만 그 때에는 얼마나 넓은 운동장이었는지 뛰고 뛰어도 다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컸었다. 지금은 TV나 다른 미디어를 통해 눈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아 색깔에 대한 감각이 둔하지만 그 때에는 운동장 하늘을 가로지르는 화려한 만국기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하늘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어머니께서 싸주실 맛있는 김밥 도시락을 미리 입맛 다시며 그 운동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달리기에서 1등을 하면 공책과 연필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어떻게 하면 일등을 할까 이리 저리 궁리하며 실상 8명이 함께 뛰는 경기에서 2등을 했을 때 아쉬움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봐야 일등과 이등의 상품 차이는 연필하나 차이인데 상품을 타려고 1등줄에 서있던 친구를 2등줄에서 부러움으로 바라보았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1, 2학년들의 무용, 3, 4학년들의 체조, 5, 6학년들의 곤봉체조, 그리고 6학년 남자들의 기마전, 그리고 오자미 던지기가 하루의 진행을 채웠다. 그래도 가을 운동회의 마지막은 릴레이였다. 선생님, 학부모님, 학생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 모두 함께 참석하는 릴레이는 운동회 마지막을 박수와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달리는 그 릴레이,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을 수 도 없고, 마음 조리며, 넘어질까, 너무 느리게 뛰어서 우리 팀이 지지는 않을까하며 소리치며, 박수치며,“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하며 응원했던 그 때의 시간들, 그때의 나날들, 그 때의 가을! 그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올해는 청군! 내년에는 백군! 그 청군이 올림픽 팀도 아니고, 전국 체전도 아닌데 그 때의 승리는 이루 말할 수 없어 기뻤고, 진 팀중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아쉬워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그 1등한 친구가 누구인지, 3등한 친구가 누구인지, 그 청군은 어디에 갔는지, 그 백군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가을만 생각날 뿐이다.
물은 산에서 흘러 나와 골짜기가 되어 흐르고, 이리 저리 흩어져 작은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만나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 서쪽으로 가고, 북쪽에서 불어 서쪽으로 가고, 이리저리 흘러가지만 결국 바람은 하늘의 어느 공간으로 사라지게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전도서1:6-7)
지나간 가을들의 시간은 추억들을 담아낸다. 인생의 가을계절도 그럴 것이다. 가을의 한 폭 캔버스에 모든 것을 담아 우리 인생을 그려 낼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성공도, 실패도 다 하나가 되어 말할 것이다. 그 가을은 아름다웠다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그 가을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또 새로운 가을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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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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