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여행을 떠날 때는 날씨가 한 몫을 하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은 가을 날씨가 있을까 싶도록 날이 밝아오니 하늘은 더욱 푸르고 깊어 출발부터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득 차 있다. 고속도로를 여덟 시간이상 달려야 하는 무리수가 마음에 켕기지만, 그동안 새벽운동으로 다리를 단련시켜 놓았으니 내 몸을 믿어 보리라.
남쪽 조지아 주에서 북쪽 메인 주에 이르는 장장 2,143마일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바라보며 웨스트버지니아를 한없이 달린다. 존 덴버의 컨트리송이 울리는 도시 크레이트 호수 주변에 펼쳐진 노란 단풍, 그리고 테네시 낙스빌 시내의 중심가를 잔잔히 흐르는 테네시강 역시 고립된 지대여서인지 인자한 사람 같은 친밀감을 안겨준다.
체타누가에서의 지하 145피트 동굴 속 루비폭포는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는 미국에서도 가장 깊은 폭포동굴로 유명하다. 비좁고 어두운 협곡에는 종유석이 만들어 놓은 기괴한 만물상의 조각품들이 조명 불빛에 반사되어 현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석회동굴 끝에 이르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루비폭포가 형형색색의 빛깔로 힘찬 물줄기를 비 오듯 쏟아붓는데 기괴한 암벽까지도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하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 기세로 다다른 곳은 락 시티의 돌산, 크고 작은 돌마다 이끼가 덕지덕지 앉아 갈색의 절묘한 무늬를 새겨 놓고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높은 암벽에서 떨어지는 폭포 또한 장관이다.
밤이 되어 피젼 포지에서 돌리 파튼의 “스템피드(Stampede)” 디너쇼를 관람했다. 뉴욕의 브로드웨이 쇼와는 달리 풍성한 음식을 날라다 주며 서빙하는 청년들의 복장과 쇼 자체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염두에 둔 특별무대였는지, 카우보이 복장으로 말을 타고 이어지는 쇼는 한국의 옛 곡예단을 연상케 했다. 관광지답게 6개월 된 어린애를 안고 온 시골 아낙네들과 투박한 농촌 청장년들 등등. 1,000명이 넘는 관광객을 위해 하루에 두 번씩 펼치는 대형 쇼를 관람하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 든다는 이야기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마지막 이 여행의 종착지 스모키 마운틴의 최고봉을 보기 위해 한 시간 넘게 꼬불꼬불 절벽 길을 버스로 느리게 올라 일년 내내 구름에 쌓인 클링만스의 정상에 올랐다. 빽빽이 서로 큰 키를 자랑하는 마른 활엽수와 사철 푸른 침엽수가 산 전체를 덮은 단풍나무와 함께 울긋불긋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하다. 깊은 계곡 산 아래 강물 흐르는 곳 어딘가에 곰과 엘크 가족들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산 아래 안개처럼 흰구름이 산자락에 걸려있다. 이 구름은 1837-1839 백인들의 무자비한 강제추방정책에 의해 ‘눈물의 유랑길(Trail of Tears)’에 올랐던 체로키 인디안 원주민들이 다 함께 피웠던 담배연기가 눈물과 함께 범벅이 되어 구름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클링만스 정상에서 내려오는 도중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오는 젊은 부부, 노년의 체력단련과 추억 쌓기를 위해 이곳을 찾은 듯 서로를 부축하며 올라오는 노부부의 모습이 왠지 우리 일행과 닮은 듯하다. 가쁜 숨을 쉬고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본 자연 경관은 마치 장엄하면서도 수려한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가 시간을 망각한 체 멈추어 있는 듯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애팔래치아의 수려한 산세와 인디안 부족의 슬픈 역사가 한 동안 머릿속에 맴돌 것 같은 짧으나마 아쉬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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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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