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뽕짝이라는 트로트가 왠지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아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꺼버리거나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다. 시대를 따라 흐르는 유행 탓인지 내 나이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 트로트의 매력에 흠뻑 젖어버렸다. 감성이 풍부했던 시절 명곡은 물론 발라드나 팝송 등 내 취향에 따라 듣던 옛날과는 달리 웨스턴 컨트리 송까지 이제는 다양한 멜로디에 마음이 열리니 귀가 호강을 한다. 한정된 채널을 통해 많은 고국의 음악프로그램을 즐길 수는 없지만 열린 음악회,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가요무대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시청자가 되어 생활의 보약 같은 방송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지금껏 수없이 이사를 가 보아도 꾸준히 서로를 격려하며 매일 함께 걷는 커플을 보기란 쉽지 않다. 창밖으로 어스름하니 날이 밝아오면 눈을 뜨자마자 게으름이 나를 붙잡기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첫발을 디디는 순간 코끝에 와 닿는 새벽 공기가 달다. 깊은 호흡을 내쉬며 걷노라면 몸속 어디에선가 불쑥불쑥 솟아나오는 엔돌핀이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번질 때는 어떤 보약으로도 대신할 수 없음을 체험으로 알게 된다.
지금은 따로 떨어져 자주 만날 수 없지만 수년간 한 동네에서 수시로 서로의 집을 들락거리며 놀던 친구들 이야기다. 약속도 없이 하루의 시작을 산책길에서 만나 담소하며 걷는 것은 물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솜씨 좋은 친구가 수제비 한 그릇으로 우리를 초청한다. 여자 넷이 모이면 입이 무겁던 친구조차도 하하, 호호 한 두 마디로 시작된 호들갑은 어느새 웃음소리가 되어 집밖으로 새어나가는데 하물며 의기투합한 사이라면 오죽할까? 그런 날은 각자 주머니에 5불씩 넣고 집을 나선다. 식사를 즐기고 2차로 치르는 화투놀이는 순간순간 짜릿한 반전이 있기에 우리네 인생을 닮아 스릴이 있다. 고스톱이란 게 그렇다. 이 놀이가 치매예방에 좋다는 건 알고 있는 상식(?) 이지만 무엇보다 스스럼없이 비좁은 속내를 드러내어도 웃으며 받아 넘길 줄 아는 기치와 아량이 세월 속에 묻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끼’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남편조차도 우리의 이 모임만큼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옛적 나의 친정집은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으레 마지막 코스로 화투놀이가 빠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명절 이야기가 나오면 화투놀이 친구들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얼굴들을 그리워하는 듯….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친인척보다 더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지금껏 우정을 이어오고 있으니 나에게는 보약 같은 친구들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주는 음악, 건강을 매일 지켜주는 아침의 산책, 그리고 치매예방의 특효약인 화투놀이, 이러한 것들이 무료함을 덜어주고 늙음을 지연시켜주는 공기 같은 귀한 보약이 되어 삶을 한층 윤택하게 해준다.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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