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밑 팔순의 나이를 맞고 또 한 해를 보내며 과연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조용히 자문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팔십을 넘기고 보니 눈만 깜박하면 하루가 간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을 일순(一瞬) 이라고 하는데 눈을 몇 번 깜박이니 아흔이 넘었다” 김동길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필자는 젊어서 한때 에밀리 디킨슨의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이라는 시를 애송했었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
이 시구가 오랜 동안 가슴 속 깊숙하게 꽂혔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디킨슨 시인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디킨슨은 평생 독신으로 아버지와 함께 기거를 하면서 바깥출입을 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말년에는 은둔자로 살면서 시를 하루에 한 편씩 쓴 유별나게 감수성이 풍부했던 여류시인이다.
어제 지인 한 분이 저녁 시간에 만날 수 있겠냐고 전화를 주셨다. 한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고 있지만, 만나서 할 얘기가 있고 또 만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지인이든 친구이든 사람의 마음을 금력이나 권력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걸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여성이 바로 에밀리 디킨슨이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내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한 순간, 아니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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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원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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