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한 출판사가 유명한 과학자 110여명에게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에 대해 물었다. 많은 대답 중에 더글러스 러쉬코프라는 과학저술가는 ‘지우개’를 꼽았다. 이유는 되돌아가서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다면 과학, 문화, 도덕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00년도 넘는 역사에서 ‘지우개’가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그의 주장에 내가 완벽하게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지금의 과학 발전을 위해 그 누군가는 밤을 새워 쓰고 지웠을 것이며, 새로운 문화의 탄생은 지난 세월의 지움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현재를 빛나게 하고, 미래를 구상할 많은 일들은 세월을 흘려만 보내고 때마다 미련과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몫은 아니다.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과감하게 지우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가 바뀐다고 특별한 계획을 세운다거나 거창한 목표도 없다. 그저 올해엔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나 잘못된 습관은 ‘지우개’로 지워보려 한다. 지워 없애야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첫 실천은 찍고 나서 관리하지 않아 꽉 찬 핸드폰의 사진 폴더부터 시작했다. 지워서 비어진 공간에 욕심내지 않고, 또 한해를 채울 것이다.
<박명혜 /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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