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안에는 세 사람이 살고 있다. 성급한 사람, 차분한 사람, 느긋한 사람이다. 성급한 초침, 차분한 분침, 느긋한 시침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계는 멋진 조화를 이루며 미래의 문을 열어가고 있다.
성급한 초침은 차분한 분침을 비판하지 않는다. 또한 느긋한 시침은 성급한 초침을 비판하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함께 더불어 공존해 나아가는 것이다.
북미주의 도시들마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더 나아가 교단 내에서도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이런 모습들을 놓고 사람들과 공동체가 모두 다 썩었거나 타락한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을 위해 평생을 투자하라’라는 책에 보면 금세기 최고의 기독교 지성이요, 영성운동가였던 헨리 나우웬은 살아있을 때 평균 500명 이상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들에게 장애인 공동체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방문해주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의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는 누구와 만나든지 백퍼센트 그에게 집중하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대했다고 말한다.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열린 모습으로 그들의 연약함 뒤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준 것이다.
1990년 중반 첫 이민목회를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했을 때 선배 목회자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목회 1년은 설교로, 목회 2년차는 덕으로, 목회 3년부터 은퇴까지는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힘겨운 삶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기꺼이 상대방을 위해 바닥을 기며 오물을 묻히는 것이다. 비록 이해가 안 되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를 더 잘 알기위해 과거에 그가 입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덮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빈구덩이를 메우듯 상대방의 부족한 면을 발견하더라도 조용히 메꾸어주고 보자기와 같이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사람이 주변에 모이게 된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실력에는 고개를 숙이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힘겨운 ‘나 중심적(ME Generation)’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늘 하는 사랑과 선행이 내일이면 잊힐지라도 소외되고 고통 받는 자들, 그늘진 곳을 향한 사랑의 손길을 지속적으로 베풀어야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서는 선택할 수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을 향한 태도와 반응은 우리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어거스틴은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이라고 말했다. 깊어가는 이민의 역사 가운데 서로의 차이점을 변화와 성숙의 해산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모적이고 비본질적인 논쟁보다는 후회함이 없는 사랑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며 마른 지팡이에 싹이 나듯 사랑의 꽃을 피워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갈등과 위기의식, 변화들은 다음세대를 위한 비전과 희망의 씨앗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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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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