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는 19세가 된 1505년 6월 2일에 큰 위기를 만났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부모를 만난 후 루터는 친구와 함께 에르푸르트 대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목적지 까지는 이제 불과 4마일밖에 남지 않은 슈토테른하임(Stotternheim)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먹장구름으로 변하면서 폭풍우를 동반한 벼락이 내려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행하던 친구는 새까만 잿더미로 변해 버리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 루터는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신을 벗고 무릎을 꿇듯이 루터도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저를 살려 주세요. 저를 살려 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생존한 루터는 법률 공부를 포기하고 어거스틴 수도회로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다. 그 후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겸허하게 성경을 연구하면서 종교개혁의 꿈을 키웠다.“
(루돌프 티엘의 ‘Luther'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비슷한 체험이 있다. 농노해방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체포된 후 그는 사형언도를 받았다. 불과 24살 때다. 죽음의 두려움으로 창백해진 그의 얼굴에 검은 두건이 덮이고 총살당할 세 명의 죄수들과 함께 말뚝에 묶여졌다. 그때였다. 급하게 말을 타고 달려온 전령이 “사격중지“를 외치고 사면장을 내 놓았다. 사형 대신 4년 간 시베리아 강제 노동형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면의 순간을 새 생명의 탄생으로 받아들였다. 한 순간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문학적 천재성은 이때부터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쓴 작품이 '죄와 벌 ', ' 악령 ',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등이다.
삶의 새로운 도약이나 비범한 작품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오늘의 혼돈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위기의식의 절박감을 통해서 진정한 믿음이 확정되며 고결한 성품은 연단된다. 헬렌 켈러는 말했다. “인격은 편하고 조용하게 개발되지 않는다. 시련, 고난, 시행착오의 연단을 통해영혼은 빛나고 비전은 명확해지고 거룩한 야망이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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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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