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한 가운데 외딴 섬. 맑고 푸른 파도, 끝없이 펼쳐진 부드러운 모래 해변, 수면은 잔잔하고 평온하다. 토파즈 빛의 하늘은 깨끗하다 못해 투명하다. 여기서는 갈매기도 평화롭다. 야자수 아래에 누워있으니 시원한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파도 소리. 자장가보다 더 자장가스럽다.
지난 달, 이 청정지역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침투했다. 흥부 가게는 하루아침에 손님이 뚝 끊겼다. 렌트비와 인건비도 못 줄 형편이다.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옛날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600년 전의 유럽. 흑사병(black death)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인 1억 명이 죽었다는 얘기. 그것이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다행이 정부에서 긴급 자금을 지원해준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막상 신청서를 쓰다 보니, 매상 떨어진 것을 증명하란다. 25% 이상 매상이 떨어진 업체만 자격이 된다는데,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데,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지?
3일을 굶은 아이가 있고, 1일 굶은 아이가 있다. 배고픈 것은 둘 다 마찬가지다. 빵은 누구에게 먼저 가야하나? 3일 굶은 아이에게 가야한다. 매상이 더 많이 떨어진 업체에 정부 돈은 가줘야 한다. 작년 2월과 3월 매상은 100달러. 금년 매상은 70달러. 그러면 실제 매출 감소는 30%다. 그런데 작년에 매상을 80달러로 줄여서 세금 신고했다면? 그렇게 따지니 매출 떨어진 것은 13% 뿐. 실제로는 3일을 굶었는데, 서류상으로는 하루 밖에 안 굶은 것으로 나온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옛날에 9/11 터졌을 때, 놀부는 맨해튼의 WTC 건물 바로 옆에서 장사 했다. 보험회사에서 6개월 장사 못한 보상금을 줄 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1년 순이익의 50%를 보상해줬는데, 고작 1,500달러밖에 못 받았다. 그 전년도에 모든 비용을 공제한 뒤의 순이익을 3,000달러만 세금신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놀부는 그 돈만 받고 어디 가서 하소연 한 마디 못했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고객들의 정부 지원금 받는 것을 도와줬다. 이자율 3.75%짜리 sba 긴급 대출금(economic injury disaster loans), 뉴욕의 인건비 무상 지원금(employee retention grant program), 그리고 무이자 대출금(small business continuity fund) 등. 모두 내 매상이 현저하게 떨어졌음을 내가 증명해야 한다.
지금 돈 나눠주는 사람들 책상위에는 전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죽겠다는 소리들로 아우성이다. 그것만 갖고는 남들과 차이가 없다. 거짓말을 억지로 지어내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임팩트가 강해야 산다. 하루 밖에 안 굶었어도, 한 옥타브 높게 곡소리 내는 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눈길이 간다. 그래야 빵을 받는다. 태평양 한 가운데 그 섬. 우리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건강하게 살아남아서 거기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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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한/공인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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