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새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냉장고 속에서 썩어나가던 채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트에서 욕심껏 사들여 냉장실에 잔뜩 쟁여 놓았다가 미처 다 만들어 먹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채소들과 유통기한 지나서 버려졌던 유제품들과 가공식품들까지 풍요가 넘쳐나던 시절이 불과 한두 달 전이다.
그런데 요즈음 냉장고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끼고 소중하게 하나씩 꺼내서 귀히 여기며 먹는다. 당근 하나도 말라비틀어지는 일이 없다. 파는 사오기 무섭게 깨끗하게 씻어 종종종 썰어서 그릇에 담아 보관하고 상추도 먹을 만큼 한 잎씩 뜯어 씻어 먹고 남은 상추도 시들기 전에 무사히 먹어치운다. 시들기 쉬운 시금치도 냉큼 데쳐 먹고 무쳐 먹고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가 나중에 꺼내서 적절히 사용하다보니 버려지는 채소가 하나도 없다. 아침에 먹는 빵도 유통기한 내에 먹다가 남을 것 같으면 갈아서 빵가루로 만들어 놓는다. 하루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는데 메뉴는 자연스럽게 냉장고 안의 식자재를 최대한 사용하는 선에서 결정하다 보니 버려지는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진즉에 이렇게 알뜰하게 살림을 했어봐라. 스스로에게 반성의 잣대를 들이댄다.
마트에 가도 물품들이 빼곡했던 매대가 비어 있다. 내가 사고자 했던 물품들이 며칠 있어야 들어온다고도 하고 물건 값이 대폭 오른 품목도 있음을 알겠다. 나는 김치를 담가야 하는데 배추값이 예전보다 훨씬 비싸고 세일 계획도 없다고 하지만 울며겨자먹기로 배추를 사러 마트에 나간다. 이같은 품귀현상이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지 아니 어쩌면 이제 막 시작일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화수분처럼 손에 쥐어진다고 믿고 돈! 돈! 하며 흥청망청 소비하며 살아온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 확산이 되면서부터 모든 도시가 봉쇄되고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만 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균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떠돌다가 전염병을 퍼트려 놓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들이 등장하는 재난영화 같은 이 현실과 대면한 사람들이 어찌 할 바 모르고 허둥지둥 갈팡질팡 헤매는 모습들이다. 위태롭고 위험해 보인다.
푸릇푸릇 돋아난 새 순을 보면 필경 봄이 다시 왔건만 자연이 빚어내는 장관은 변함없음에도 가정경제, 국가경제가 타격을 입어 휘청거리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에 왠지 서글퍼지는 내 마음을 부는 꽃바람에 날려 보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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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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