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현상 중 하나가 가정식 요리의 증가라고 한다. 평소 요리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대범하게 시도하는 것을 제법 볼 수 있다. 그래서 종종 솜씨를 자랑하는 사진들이 페이스북에 올려지는 것을 본다. 특히 평소에 아내에게만 의존하던 남편들마저 거리낌 없이 자신들이 만든 작품들을 선보여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식욕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원래 요리와는 거리가 먼 내가 최근에 감히 요리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계란말이를 시도해 보았다. 처음이니 당연히 레시피부터 검색해 볼 수밖에 없었다. 유튜브 비디오도 같이 살펴 보고 가장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배운 것이 있다면 우선 계란 말기의 시작은 계란이 약 70% 정도 익었을 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준비한 재료도 한 번에 모두 프라이 팬에 올려 놓는 게 아니라 절반 정도만 올려 놓고 계란을 말면서 팬에 생기는 공간에 나머지를 두 번에 나누어 추가하고 익히며 계속 말아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생 처음 만들었던 계란말이가 성공적(?)이자 욕심이 생겼다. 좋아하는 야채가 너무 적게 들어간 것 같아서 다음에는 더 넣어 보고 싶었다. 이에 기존의 레시피는 무시하고 내가 먹고 싶은 만큼 잔뜩 썰어 넣기로 했다. 그랬더니 계란과 야채가 섞여 있는 모습이 마치 예전에 어머님이 해 주시던 빈대떡 부침의 반죽처럼 되었다. 그리고 결국 처음과 달리 예쁘게 말아지지 않았다. 여러 곳이 터져 미국식 오믈렛에 더 가까운 계란야채 부침 정도로 나왔다. 그러면서 생각난 게 대학교 때 먹던 에그 푸영(Egg Foo Young)이었다.
대학교 시절 주말에 종종 인근의 MIT대학 캠퍼스에 놀러 가곤 했다. 내가 다니던 하버드 대학 보다 MIT에 더 친한 친구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당시 하버드 대학의 한인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적에 온 학생들이어서 고교생 때 이민 온 나와는 문화적 차이가 제법 있었다. 그 당시 미국에 온지 몇 년 안 된 나는 미국인들이나 다를 바 없었던 그 한인 학생들이나 미국인 학생들과 그다지 편하게 사귀질 못했다.
MIT 친구들과는 금요일 저녁에 보스턴 다운타운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에 가서 저녁을 먹곤 했다. 당시 차이나타운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생인 우리에게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충분한 먹을 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즐겨 먹었던 음식이 에그푸영이었다. 중국식 오믈렛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음식은 값도 싸고 양도 푸짐했다. 물론 돈을 조금 더 주고 고기나 해산물 등을 추가할 수도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우리는 보통 야채 위주로 먹었다. 야채 중 특히 양파가 많았다. 이러한 내용물을 계란에 섞어 프라이팬에 부쳐 밥에 얹어 준다. 그 위에 그레이비소스를 듬뿍 뿌려 주고 말이다. 큰 그릇에 따근하게 가득 채워져 나오는 이 것을, 당시 고된 한 주의 공부를 마치고 먹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후 우리가 빼놓지 않는 게 있었다. 가까운 영화관에서 연속 상영하는 중국영화 3편을 모두 보고 나오는 일이다. 무협이나 사랑 영화였다. 그 것도 우리 학생들이 가장 돈을 적게 들이고 즐길 수 있었던 기쁨이었다. 그런데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있으면 처음에는 잘 안 보였지만 점차 주위에 누가 영화를 보러 왔는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종종 눈에 띈게 박사학위 과정 선배들이었다. 애인도 없고 재정적 여유도 없던 그 선배들도 주말에 가는 곳이 결국 어린 학부 후배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선배를 본 이상 가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그 때마다 멋쩍어 하던 그 형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제는 모두 은퇴했지만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서 요직을 맡았던 그 형들의 소박했던 유학생 시절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제는 사라진 그 식당들과 영화관을 더 이상 눈으로는 안 되어도 마음으로는 그래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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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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