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와 하수구, 불록 뒤에 있는 똥 무더기들, 처음에 그 모든 것들의 참을 수 없는 불결함은 나를 얼떨떨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그것은 혼란이나 무질서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수용소 생활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철저한 계산 된 고의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똥오줌 속에 빠져 죽게 하고, 진흙창과 배설물 속에서 죽어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기를 원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파괴해서 우리를 짐승 수준으로 타락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테렌스 데 프레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 중에서)
변소에 가지 못하게 한 다음, 먹은 데서 자고 짐승처럼 배설하게 만들면 인간의 자존감과 품위는 허무하게 짓밟힌다. 정신력은 어린아이 수준으로 퇴행하고 스스로 죽는 사람이 속출한다.
유대인들은 이 음모를 일찍이 간파했다. 그래서 물 한 컵을 배급 받을 때 다 마시지 않았다. 물을 아껴 몸과 얼굴을 청결하게 닦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인간의 품위를 끝까지 지켜내었다.
수용소는 오물이 범람하는 비루한 공간이지만 짐승 같은 최후를 맞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인간의 품위를 짓밟는 권력 앞에서 자신의 몸을 청결하게 지켜낸다는 것이 곧 생명을 지켜내는 힘이라는 것을 그들은 굳게 믿었다.
다윗의 삶은 굴기와 추락의 폭이 컸다.
다윗의 운명의 변화는 품위의 질과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 청년의 때 다윗은 몇 가지 품위 있는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과 백성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몇 가지 열등한 품위(밧세바와의 스캔들, 인구조사 등)로 인해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했다.
선지자 나단은 고도로 훈련된 영적 품위를 갖추고 있었다. 세상 권력을 쥔 다윗을 향해 나단은 ‘양 한 마리 가진 가난한 사람’의 비유를 들어 경책했다. 다윗 왕 앞에 선 나단은 세상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품위 때문에 위대한 선지가가 되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한 생존자는 말했다. “우리들이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증거는 배설물과의 접촉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것과 불꽃같은 소망의 눈동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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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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