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4일, 유난히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퇴근하는 남편을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앞 상점가 입구의 모퉁이에는 작은 애견샵이 있었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종종 그곳의 쇼윈도에 붙어 귀여운 강아지들을 구경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몹시 추웠기 때문에 어서 집에 돌아갈 생각뿐이었는데, 남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작은 갈색 푸들 두 마리가 사이좋게 붙어 있는 모습이 몹시 귀여웠기 때문이다.
남편이 불쑥 외쳤다. “우리가 데려 가야 해!”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선언이 튀어나왔을까? 나는 절대 안된다며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다 그만 강아지들과 눈이 마주쳐 버렸고, 그 엄청난 귀여움에 굴복해버린 나머지 꼬물이 두 마리를 품에 넣고 귀가했다. 그리하여 서울 서대문 출신의 개 두 마리는 유럽을 거쳐 캘리포니아까지 우리 부부와 십 년째 함께하고 있다. 이름은 테디와 캐리. 테디 베어의 테디와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의 캐리다. 남편 작품이다.
테디와 캐리에게는 여권도 있다. 유럽 연합에서 발행하는 반려동물 여권이다. 십 년치가 되다 보니 두께가 엄청난 의료 기록 파일도 있다. 이런저런 입국 증명서류들까지 합치면 웬만한 인간 못지않게 신원이 확실하다. 캐리는 알레르기 검사 결과에 따라 꽃가루를 피하기 위해 봄에는 산책을 하지 않고, 테디는 피부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매일 몸 구석 구석을 살핀다. 살이 찌면 척추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간식을 주지 않고, 절대 사람 음식은 주지 않는다. 예방접종, 덴탈 클리닝, 애견 미용은 늘 스케줄을 미리 잡아 관리하고, 휴가를 떠날 때에는 친분이 있는 수의사에게 맡기고 있다.
가끔 우리보다 개들의 숙박료가 더 나와서 억울하다. 하지만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 개의 수명이 지속되는 한, 이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 개가 할 일은 단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뿐이다. 그들은 그저 간식만 탐하며 낮잠만 잔다. 가끔 밤에 지진이 나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 잔다. 대신 예민한 내가 벌떡 일어나 개와 운동화를 끌어안고 거실로 달려 나간다. 선사시대 동굴에서 밤마다 우리 조상들을 지켜주던 늑대의 후예들이 귀여움으로 인간을 길들인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진화인가 나의 퇴화인가? 요망하고 위험한 것들이다.
<이현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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