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안에서 꼼짝을 못할 때다, 손자애들이 보는 영상을 따라 보다가 놀란 것은 광고난에 때아닌 Souths Korea 라고 대형 글씨가 보였고 이내 수십마리 개들과 한국 남자의 꾀죄죄한 모습과 함께 투박한 뚝배기에 개장국을 끓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나는 그만 다른 영상으로 돌리면서 문득 조지 플로이드를 떠올렸다. 언젠가 미국에 이민와서 아이리시 동네에서 수퍼마겟을 하면서 제일 먼저 피부로 느낀 것은 인종차별과 동시에 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백인이라고 칭하는 아일리시도 이민 초창기 잉글랜드 백인들에게 수없는 차별을 받은 것에 비해 흑인은 300여년 전 노예로 팔려 와서 갖은 구박과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음에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들의 한을 대변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백인이라고 칭하는 아이리시도 천대를 받은 것은 흑인 노예들은 힘이 세고 쓸모가 있는데 비해 아이리시는 힘도 없고 빈대처럼 붙어 산다고 그렇게 미워하고 천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케네디 대통령의 자서전에서 알 수 있었다.
그렇듯 케네디 아버지 조섭은 최고의 대학 하버드를 다닐 때만 해도 흑인, 백인 따로 화장실을 사용했을 정도로 인종 차별을 받았고 조섭 역시 흑인 화장실을 쓸 정도로 무시를 당했고 대학을 졸업을 하고 백군데도 더 넘게 이력서를 보냈는데 한군데도 오라는 통지가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케네디 할아버지가 이민 올 때 술을 담는 술통 만드는 기술로 거부가 되면서 이름도 없는 작은 도시에 은행을 판다는 광고를 보고 통채로 은행을 사는 바람에 졸지에 젊은 나이에 조섭이 은행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차츰 아이리시도 세상에 인정을 받으면서 대통령까지 배출됐지만 적은 어디든지 있고 인종차별 또한 언제 터질 지 모를 화약고를 안고 있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말하기를 플로이드는 흔히 보는 범죄인일뿐 영웅도 흑인을 대표 하는 인물도 아닌 그들 나름대로 뭉쳐있는 화산이 터졌을 뿐이라는 말은 언젠가 한인이라도 이 땅에 사는 한 그들의 적의 대상이고 개고기를 판다는 이유로 우리를 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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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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