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구약성경 ‘창세기 12: 1-4’ ESV Version)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 온 가족과 거주지를 떠난다는 것은 쉽지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떠난다. 어떤 이는 성공을 위하여, 학업과 직장을 찾아 떠난다. 아브라함도 떠났다. 아브라함의 떠남에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리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받을 축복의 내용 안에는 아브라함 자신이 복 받는 것만 들어있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복을 가져올 수 있게 하기위하여 그가 복을 받게 된다는 이타적 책임윤리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삶에 있어 기억은 신성하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입성하고 난 후에 여러 번 실수하고 믿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브라함은 기억을 되살려 냈고, 기억의 회상을 통하여 그의 신앙 정체성을 지켜내었다. 산술 계산이 영민했던 조카 롯이 더 비옥한 땅을 차지했을 때에도 아브라함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기억을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5,000년 인류역사 속에서 유대인이 문명의 주인이 된 경우는 없다.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슬람 문명과 경쟁 해 본 적이 없다. 유대인에겐 석기시대도 청동기 시대도 철기시대도 없었다. 유대인은 군사 패권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받은 신성한 기억만이 유대인의 가슴속에 지금까지 살아있다.
유대인이 AD 70년 로마에게 정복당한 후 디아스포라 나그네가 되었을 때, 이 신성한 기억은 더욱 빛을 발했다. 이 신성한 기억을 바탕으로 심오한 신학과 종교 사상을 발전시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정보를 보관,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신성한 기억을 현재화, 미래화 했던 아브라함 정체성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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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 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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