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에서 밀어닥치는 허리케인이 점점 사나와 지자 집을 덮칠 까 겁나는 사람들이 나무 몇그루를 지난봄에 잘라냈다. 무섭게 퍼지는 대나무도 굴착기로 뽑아내자 갑자기 뒷마당이 넓어졌다.
뒷쪽으로 잔디 심고 숲 앞에 조팝나무 심은 정원은 눈감아 줄만한데 중간에 계절꽃 심는다고 만든 꽃밭은 몇 년간 돌보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다.
꽃밭을 위해 그럴듯한 청사진을 그렸는데 오래 살아 기쁘다는 희수에 달한 나도 역시나 힘이 다 소진됐는지 삽이 흙에 꽂히지 않아 뜨끔했는데 흙속에 나무뿌리가 빼곡히 박혀있었다.
기후변화인지 찜통 더위 속에 잡초와 나무뿌리를 골라내고 꽃 3 포트를 심으니 한시간이 소비, 20년 전에는 하루에 이 꽃밭을 완성했는데 지금은 여름이 다 가도록 반도 못 채우고 내년으로 넘기기로 했다.
“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서정주의 시를 떠오르며 노년에 취미로 정원이나 가꾸며 꽃과 벗 하면서 자연이 주는 자유와 작은 기쁨을 누리고자 했는데 노인의 꿈에 불과 했던가 보다.
기진맥진하여 땀범벅을 씻은 후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으니 갑자기 초등학교 때 운동회가 떠오른다. 마을축제 같았던 시골학교 운동회날에는 재미나는 경기와 5일장 때나 맛볼 수 있는 리어카 위에 먹거리가 넘치는 즐거운 날이었다.
사람 찾아 짝지어 달리는 경기에서 나는 군인아저씨와 손잡고 끌리다시피 매달려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그런데 그만 등수에 못 들자 무슨 애가 이렇게 못 뛰냐 라는 군인아저씨의 핀잔 받던 아이였다.
그렇게 돌고 돌아 미국이라는 나에게 딱 맞는 곳에 정착하면서 노력하고 수고하고 인내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정말 잘 뛰어 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잡초와 싸우며 열심히 흙을 다지다 보니 인간에게 양식과 치유와 영원히 품어줄 흙의 한수를 배운다. 자연재해, 전쟁, 팬데믹, 불평등 같은 우울한 세상이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다 라는 신념으로 답도 없는 질문은 던지지 말자.
화려한 빛깔로 물들어 가는 단풍처럼 변화에 동화하면서 멋있는 색깔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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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옥/뉴저지 이스트 하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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