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하고 같은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냄비 안에서 숟갈이 부딪혔을 때
그렇게
아득할 수가 없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딩딩 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것이 끝이라 해도 끝 아니라 해도
다시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하얗고 먼 길 하나 휘어져 있었다
같은 아픔을 보게 되리라 손가락이 다 해지리라
어떻게 되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한 순간이 다가와 연(緣)을 두었고
슬픔을 결심하게 하였으니
지금도 아련히 더듬어 가보는 그 햇빛 속
수저 소리 흐릿하게 남아 있던 그 점심나절에
내 일 모르듯 벙글던 흰 꽃들 아래에
‘이른 봄’ 이규리
두 숟가락 모두 놀랐을 것이다. 캄캄한 찌개 속에서 맞부딪치는 순간, 해야 할 일이 단순히 국을 뜨는 일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펄펄 끓는 냄비 속에서 두부 한 점, 뜨거운 국물 한 술 이상의 무엇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달그락거리던 재주지만 최대한 깊은 종소리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휘어진 스테인리스 손잡이가 슬픔의 암시가 되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을 벗어난 냇물처럼 끝내 꽃피는 봄길로 걸어가길 바랐을 것이다. 반칠환 [시인]
<이규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